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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긴 잠 깨는 성지 이스라엘이 부른다

부활하는 성지순례… 현장에선

서울 연동교회 권사회원들이 유대 광야의 한 언덕에서 성찬식을 한 뒤 찬양하는 모습.

성경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묘사된 이스라엘은 역설적으로 국토의 60% 이상이 광야인 척박한 땅이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고 이 땅을 밟았을 때도 이스라엘은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나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영적인 땅이면서도 그 어떤 곳보다 많은 비밀을 품고 있는 이 땅에 젖과 꿀이 흐른다고 한 이유는 분명 있다. 인간적 관점의 옥토가 아닐 뿐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과 자라신 나사렛, 북쪽 끝 헬몬산과 물줄기를 쉬지 않고 뿜어내는 단과 바니아스, 바다처럼 넓은 갈릴리 호수,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요단강과 해수면보다 400m나 낮은 사해, 그리고 네게브 사막의 먼지바람 속에도 깃든 축복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이스라엘이다. 전 세계 성지 순례객이 쉬지 않고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코로나 팬데믹의 광풍을 피해 가지 못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순례 행렬이 끊겼다. 숙박과 식당, 기념품 상점 등 성지를 둘러싼 생태계는 2년 가까이 숨죽이며 전염병 종식을 기다렸다.

몇몇 국가가 코로나 거리두기를 완화하면서 성지는 조심스레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한국교회도 지난달 18일 거리두기 전면해제 이후 성지를 향해 잰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미 지난 17일 서울 연동교회(김주용 목사) 권사회가 개별 지역교회 성지순례 팀으로는 처음으로 성지를 밟았다. 이뿐 아니다. 성지 전문 여행사가 여러 교회 교인을 대상으로 단체 순례객을 모집한 경우는 물론이고 천주교회 순례팀도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나섰다.

성지도, 순례객도 꿈틀

성지는 코로나로 2년 넘게 휴지기에 들어갔다. 수천 년 동안 성지였던 이 땅에 순례객 발길이 멈춘 건 성지 주민들에게도 낯선 일상이었다. 베다니 나사로기념교회 앞에서 대를 이어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요셉씨는 지난 20일 “긴 시간 동안 순례객이 단 한 명도 찾지 않았다. 최근 들어 조금씩 순례객이 늘고 있다”면서 “늘 인파로 북적이던 곳이었는데 이토록 한산한 걸 본 게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기억했다.

서울 연동교회 권사회원들이 지난 20일 이스라엘 유대 광야 절벽에 있는 마르사바수도원 건너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수많은 순례객이 몰려 서로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걷기 어려울 정도였던 비아 돌로로사도 한가롭기는 마찬가지다. 새벽부터 성지를 찾는 순례객을 상대로 장사하던 기념품 가게들도 여전히 닫힌 문을 열지 않고 있을 정도다.

‘고난의 길’로 불리는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시고 걸었던 길을 말한다.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길에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 지점이 있고 이 중 10번째 지점부터는 성묘교회 안에 있다.

코로나 중 새 단장을 한 성지도 적지 않다. 베다니의 나사로 무덤은 습기가 많아 눅눅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코로나 중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쾌적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무덤을 더 깊게 파던 중 발견한 석관도 전시하고 있어 볼거리도 늘었다.

시드기야 동굴도 마찬가지다. 예루살렘 지하에 있는 동굴로 깊이 200m, 폭 40m에 달해 축구장처럼 넓게 느껴진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 석재를 떠내면서 생긴 굴로 전해진다. 시드기야 동굴이라 부르는 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을 파괴할 때 유다 왕 시드기야가 이 동굴을 통해 여리고로 도망했다는 전승 때문이다. 코로나 중 보수 공사를 시작한 동굴은 현재 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한적한 성지순례는 보너스

2년여의 공백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성지나 순례객 모두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했을 뿐이다. 성지도 순례객을 맞이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지 못했다. 숙박이나 식당, 버스 등 모든 비용이 비싸지면서 성지순례에 필요한 전체 예산이 20% 가까이 높아진 것도 문제다. 하지만 이런 부족함 때문에 오히려 좋아진 면도 있다. 순례객 수가 코로나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보니 성지가 한적해졌다. 당분간 여유롭게 성지순례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실제 성지에서도 이런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요르단강 서안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에서도 코로나 이전과 달리 여유가 느껴졌다. 베들레헴 시내에서 남쪽으로 8㎞ 떨어진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장소로 알려진 곳 위에 세워졌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며 세례를 받은 요르단강 세례터, 십자가에 달려 인류를 구원한 골고다 언덕(성묘교회)과 함께 기독교 3대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지은 교회의 지하 동굴에는 예수 탄생 지점을 표시한 14개 꼭짓점의 은색 별이 있다.

언제나 이 은색 별을 보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장소는 비좁고 순례객 수는 많아서다. 은색 별이 있는 지하 공간에 내려오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연동교회 권사회원들은 이곳에서 10분 가까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코로나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이 긴 시간을 보낸 셈이었다. 성지 전문가 이강근(유대학연구소 소장) 목사는 2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30년 동안 성지 가이드를 한 경험에 비춰볼 때 요즘처럼 한가할 때가 없었다”면서 “여러 상황이 불편하지만 순례객 수가 적어 어느 때보다 여유롭게 성지를 돌아볼 수 있다. 성지순례 준비를 시작한 교회들은 정한 날짜에 과감하게 출국하는 것도 좋은 결정”이라고 조언했다.

한-이 교류 확대하자

그래픽=이영은

해마다 한국에서만 5만명 가까운 순례객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왔다. 발길이 끊긴 기간 동안 늘어난 게 있다. 바로 한국에 관한 관심이다. 한류(Hallyu)는 이미 이스라엘과 한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문화에 관한 관심은 이에 대한 학술연구를 시작할 정도로 높아졌다.

이스라엘에서 한류 전문가로 꼽히는 니심 오트마진 히브리대 인문대 학장을 지난 16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세계한류학회 이스라엘 회장도 맡고 있는 니심 교수는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주변 중동국가에서 한국에 대한 팬덤 문화가 상당하다”면서 “긴 갈등을 빚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한류로 한 데 뭉치고 있는 건 눈여겨 볼 만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거리두기 전면해제 이후 성지순례객이 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성지순례를 넘어 문화 교류를 통한 양국의 폭넓은 교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기존의 성지순례에 인적·문화적 교류를 더해 좁히자”고 제안했다.

지난 18일 예루살렘 크네세트(이스라엘 국회)에서 만난 보아즈 토포로브스키 의원도 인적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아즈 의원은 텔아비브대 재학 중이던 2005년 경기도가 주최한 평화 친구 만들기 행사에 참여하며 한국을 찾았던 경험이 있다. 이후 한국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오다 지난해 한국-이스라엘 의원 친선 협회장이 됐다.

보아즈 의원은 “한국과 이스라엘을 잇는 직항편도 다시 열리길 기대하고 있다”면서 “관건은 양국민의 끊이지 않는 교류와 이를 통한 만남의 확대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은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고 그래서 공감대가 크다”며 “문화와 IT, 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는 양국의 교류는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은 그동안 물량 위주의 분주했던 성지순례를 성찰하고, 한류를 바탕으로 한국-이스라엘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고 있다.

예루살렘(이스라엘)=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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