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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윤의 딴생각] 나도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요즘 들어 부쩍 바쁘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지인들에게서 자꾸만 전화가 걸려 오기 때문이다. 사는 동안 꼴 보기 싫었던 적도 많았겠지만, 평생을 지지고 볶던 남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으니 허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있으랴. 엄마는 그런 그녀들을 이끌고 필라테스 학원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노래 교실에서 신나게 트로트도 부르고, 날이 좋을 때는 주먹밥을 싸 가지고 산에도 오르더니만, 스크린 골프장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골프를 치다 보면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넘어간단다.

하지만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어두워지기 전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혼자서는 밥을 차려 먹을 줄 모르는 아빠의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탓이다. 한 게임만 더 치고 가자는 유혹을 애써 뿌리칠 때면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얘, 서방 있다고 자랑하니?” 친구들의 농도 짙은 블랙 코미디를 나에게 전하던 엄마가 킥킥 웃었다. 개그라면 지고 싶지 않았던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가만히 보니까 엄마 말고 다른 아줌마들은 다 서방이 없네. 요즘은 서방 없는 게 유행인가 보지?” 엄마가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엄마의 친구들처럼 나 역시 남편이 없다. 있던 남편이 사라진 게 아니라 원래부터 없었으므로 딱히 적적하지는 않다. 이 한 몸 건사할 만큼 돈도 벌고 있고 아이를 낳을 생각도 전혀 없으니 남편이 있어야 할 필요를 딱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나의 생활을 기가 막히게 분석한 유튜브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영상을 자꾸만 추천해 준다. 그렇게 호기심에 하나둘 눌러 보다가 ‘독거 노총각’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사십대 남자의 인터뷰 영상을 시청하게 됐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 보지 못한 그는 낡은 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다. 아파트 연식만큼 시설도 노후한 탓에 전등 스위치를 탁 소리 나게 때려야 비로소 불이 켜진다며 시범을 보이는 모습과, 엉덩이가 시려서 변기 커버에 양말을 끼워 놓았다는 말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무리 노총각이라지만 어쩜 저리 궁상맞게 지낼 수 있을까. 끌끌 소리가 나도록 혀를 차던 나는 ‘혼자 살다 보면 옆에서 잔소리해 주는 사람이 없고 긴장이 떨어져서 자기 습관대로 살게 된다’는 댓글을 읽고 나서야 집안을 휘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화장실 불이 어두침침해진 지 오래됐다. 두 개의 전구 중 하나는 이미 유명을 달리해 나머지 하나로 버티고 있건만 그마저도 오늘내일하는 중이다.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어 나르거나 복잡한 가구 조립은 뚝딱뚝딱 잘만 하면서도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만은 왜 이리도 꺼려지는지. 온종일 화장실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니 불편을 감수하며 그냥 지냈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매일매일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두운 줄도 몰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변기 뚜껑 경첩이 부서져 아기 다루듯 살살 여닫는데도 자칫하다 우당탕 내동댕이치기 일쑤고, 시끄러워 죽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달달거리는 에어컨 소음을 참고 지내며, 창문보다 한 뼘이나 짧은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모르는 척 등진 채 살고 있다. 이 밖에도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희한한 생활 습관은 또 얼마나 많을까. 똥 묻은 노처녀가 겨 묻은 노총각을 나무랐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다지도 청승맞은 내 모습을 지켜보기가 괴롭기라도 했던 것일까. 화장실 전구가 껌뻑껌뻑하더니 이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마지못해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단단하고 뜨끈한 전구의 감촉이 손끝에 닿자 징그러운 것을 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수명을 다한 전구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터덜터덜 마트로 향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장을 보는 부부들의 모습에 자꾸만 시선이 머물렀다.

친구와의 수다가 지겨워질 즈음에 남편의 저녁을 핑계 삼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는 그이에게 껌뻑 죽는 시늉을 하며 궂은일을 은근슬쩍 떠넘길 수 있다면, 은은한 긴장이 감도는 정돈된 집에서 시시껄렁한 문제로 티격태격할 상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체적인 인생을 꾸려 나아가는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면서 이다지도 시대착오적인 꿈을 꾸는 내가 촌스럽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유행에 뒤처져도 좋으니 나도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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