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무자격 심리상담 미국선 다 감옥 가야”[이슈&탐사]

본보 ‘막장 심리상담’ 실태 전하자 곳곳서 탄식
심리학회장 “굉장히 죄송”… 복지부 “대화 부족”
[상담시장 X파일] 국회토론회

본보 이슈&탐사팀 이동환 기자 등 패널들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정신건강 정책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단상 왼쪽부터 이 기자, 김상준 한국심리학회 법률자문위원장,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윤세리 법무법인 율촌 명예대표, 이화영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 윤장열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사무관. 김지훈 기자
“한국○○진흥협회(사설업체)라는 곳에서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실제로 따봤는데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강의라는 게 있지만 2배속으로 돌리면 6시간이면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형식적인 거고 강의를 안 듣고 그냥 시험에 응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오픈북(교재를 보면서 문제를 푸는 방식)입니다. …”

이슈&탐사팀이 두 달간 취재한 심리상담업계 실태를 설명해나가는 동안 심리학과 의료계 전문가로 가득한 청중석에선 실소와 탄식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심리상담 전문자격을 표방하는 엉터리 민간자격과 이런 자격증을 앞세워 성범죄 피의자에게 정상참작용 소견서를 써주고 돈을 버는 장사꾼들, 이들에게 의뢰인을 공급하는 로펌, 또 이들에게 속아 사이비 상담에 노출되는 위기의 내담자들. 모든 사례가 그들에겐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이었다.

성범죄자가 심리치료 할 수 있는 나라

취재팀은 ‘우리만 몰랐던 심리상담 X파일’ 시리즈 보도를 계기로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정신건강 정책토론회’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심리학회가 주관한 행사다. 이들이 추진하는 심리사법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심리사법은 취재팀이 시리즈 보도를 이어가던 지난 4월 말 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심리사냐 상담사냐… 심리상담, 법이 없다). 심리사 자격을 국가자격으로 신설해 심리상담 분야에 일종의 면허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야 엉터리 심리상담사가 발 붙일 곳이 사라지고 양질의 심리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법안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자격 법제화를 통한 심리서비스 제도화’라는 큰 그림에는 모두 동의했다. 이미 손댈 수 없이 혼탁해진 심리상담시장에 자정기능을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심리학회장을 지낸 조현섭 총신대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는 “제가 심리학을 공부한 지 40년이 됐는데 지금도 누가 심리상담을 받으러 온다고 하면 두렵다. 그분들은 저에게 자신의 인생을 가져오기 때문”이라며 아무나 제약 없이 심리상담을 할 수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토론자로 참석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전과자들이 교도소에서 배워 나온 심리치료 노하우로 돈벌이하는 사례를 전했다. “성범죄자들도 교도소 안에서 500시간까지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걸 받으면서 심리치료가 뭔지 배워가지고 출소합니다. 그럼 밖에서 심리치료센터를 차립니다. 센터에선 다른 성범죄자들을 위해 양형 협상을 위한 의견서를 내줍니다. 그걸 재판부에 제출하는 일들이 지금 꽤 활발하게 시작이 됐습니다.”

이 교수는 본보가 보도한 양형 협상용 심리상담 소견서 장사 실태를 ‘극단적 사례’로 꼽았다(‘성범죄자 선처세트 팔아요~’ 엉터리 심리상담에 55만원). 그는 “성범죄를 전담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상담서비스를 제공해주면서 20시간짜리 상담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확인서를 써서 법정에다 제출하고 ‘이렇게 갱생의 의지가 있으니까 양형을 좀 줄여달라’ 이런 식으로 판결 전 단계에서부터 수발 서비스를 한다”고 말했다. 수발 서비스는 범죄자 지원 서비스를 말한다.

이 교수는 “이런 서비스가 외국에도 있지만 (법으로 정한) 심리서비스 안에 포함된다”며 “법적 근거가 있기 때문에 전문적 지식을 갖지 않은 자들은 결코 이 필드에 뛰어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나라에서 제공하는 이런 상담서비스는 모두 불법”이라며 “영미법 기준으로 보면 다 감옥에 가야 하는 일인데 이 필드가 그냥 아무나 할 수 있도록 오픈(개방)돼 있다”고 지적했다.

각계 조율 급선무인데 대화는 평행선

그러니 심리상담을 법 테두리 안에 넣어 관리해야 한다는 게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 하지만 자격 명칭과 요건을 놓고는 이견이 크다. 심리상담 관련 전문가단체 중 심리사 입법에 찬성하는 건 심리학회뿐이다. 심리학회와 대립 중인 한국상담학회는 물론 심리학회 산하 한국상담심리학회도 이 법안에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심리사법이 심리학 전공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상담학 등을 공부한 전문가들을 배척할 수 있다고 본다. 심리학회는 상담사 자격을 따로 만들든 말든 심리사부터 일단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제대로 된 (심리)상담의 정의조차 없는 상황에선 말처럼 간단치 않다. 현장 상담사들은 심리상담을 ‘상담을 통한 심리치료 등 심리적 개입’ 행위로 본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심리학계, 상담학계, 의료계가 한꺼번에 충돌한다. ‘심리’가 들어간다고 이를 심리사의 고유 영역으로 규정하면 다른 상담 전문가들은 모두 손발이 묶인다.

의료계는 의료행위로 간주되는 ‘치료’에 주목하며 심리치료가 정신과의사들 영역이라고 반발한다. 의료법은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를 금지한다. 여기서도 개념 정의가 문제다. 심리학회는 의료계와는 타협점을 찾아보자는 입장이지만 의료계가 ‘치료’라는 말을 쉽게 내줄 태세는 아니다. 끝내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면 심리사 역할에서 심리치료를 빼거나 다른 말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면 심리사의 상담과 다른 상담 전문가들의 상담을 구별 짓기 더 어려워진다.

윤장열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사무관
윤장열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사무관은 본보가 전한 엉터리 자격증 실태 등을 언급하며 “그런 걸 생각하면 제도화가 정말 필요하고 국민이 안심하고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은 복지부도 충분히 알고 있지만 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심리사 입법과 관련해) 지금 대학을 다시 가라는 거냐는 등 불이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이 있었다”고 전했다. 심리사법은 심리학 관련 과목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윤 사무관은 “좋은 제도 만들어 좋은 서비스를 내놓으라는데 뭐가 문제냐 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심리상담 등에 대한) 개념이나 정의에 대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며 “서로 간의 대화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화영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
‘심리치료’ 논쟁에 대해서도 절충점이 도출되지는 않았다. 정신과의사와 심리사의 업무 범위를 어떻게 나눌 것이냐는 질문에 이화영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순천향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런 부분을 심리사법에 명시해줘야 (심리서비스가) 의료와 연계되고 서로 배타적이지 않은 시스템으로 갈 수 있다”고만 답했다.

높은 자살률, 학계·정부 책임 통감해야

취재팀을 대표해 패널로 참여한 이동환 기자는 “심리상담을 받는 국민들은 심리사, 상담사, 의사가 제공하는 심리상담 서비스가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며 “법안을 들여다봐도 잘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심리치료를 뺀 심리사의 역할이 상담사가 제공하는 심리상담과 어떻게 다른지 누구도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전문가들의 합의가 있어야 의미 있는 입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보 이슈&탐사팀 이동환 기자
이 기자는 “정말 이 분야 핵심 전문가라면 사이비 심리상담사가 우후죽순 생길 때 제때 제지하지 못한 점, 그 와중에 우울증 환자와 자살자가 늘어난 점 등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며 “어떤 복지부 관계자는 카운셀링(상담)은 정신건강을 위한 심리서비스와 달라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을 게 아니라 국민을 생각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최진영 차기 심리학회장과 정경미 한국임상심리학회장은 각각 주제발표에서 국내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임을 재차 강조했다.

장은진 심리학회장은 “(엉터리가) 이렇게 우후죽순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며 “현 회장으로서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리사는 (자격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지 카운셀러(상담사)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윤 사무관은 “심리학회를 비롯해 (상담학회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서로 간에 입장을 확실히 하고 조율될 수 있도록 협조해준다면 저희도 조금 더 (법제화를) 속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김상준 한국심리학회 법률자문위원장(왼쪽) 윤세리 법무법인 율촌 명예대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김상준 심리학회 법률자문위원장은 국내 로스쿨 도입 당시 경험을 참고로 입법 추진 과정에서 다른 (심리상담 관련) 자격들과의 이해관계를 잘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윤세리 법무법인 율촌 명예대표는 심리상담피해신고센터 개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센터를 운영하다 보면 상습범도 파악되고 (어떻게 대응하면 될지) 그림이 나오지 않겠느냐”며 “학회나 어떤 기관이든지 간에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대응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정숙 의원은 토론회 마무리 발언에서 “저 나름대로 입법부에 있으면서 고민하겠다”며 “우리가 환자를, 국민을 중심에 두고 어떤 게 유익할까 고민하면서 협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우리만 몰랐던 상담시장 X파일’ 시리즈는 국민일보 홈페이지 이슈&탐사 코너(www.kmib.co.kr/issue)에서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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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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