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자기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한 선물, 홀리 스피릿


누군가는 벽을 허물고 누군가는 벽을 쌓는다. 누군가는 길을 내고 누군가는 그 길을 막아선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전 생애를 걸고 스스로 벽을 허물고 새로운 길을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 힘을 다해 철벽을 치고 누군가 어렵게 닦은 길조차 악착같이 막아서는 이들이 있다.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르면 선택도 달라지기 마련일까. 만남이 간절한 이는 스스로 벽을 허물 것이요, 잃는 것이 두려운 이는 괜스레 철벽을 치고 한 걸음 다가서는 것들을 공격하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쏟아붓는 에너지의 총량과 시간의 공력이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가장 정직하게 말해주는 무언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위기에 내몰린 ‘근대’의 초입에서 한국교회는 벽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경험을 한 바 있다. 1903년 원산에서 시작돼 1907년 평양에서 정점을 찍었던 대부흥운동. 초대교회 오순절 사건이 한국사회에 다시 소환돼 수백 년을 지탱한 신분과 남녀 차별의 벽을 도미노처럼 허물어뜨릴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시작은 한 사람의 정직한 자기성찰과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여느 선교사들처럼 그도 처음엔 게으름과 무지에 갇힌 영혼들을 구원하겠다는 열의로 의사직까지 내려놓고 개선장군처럼 낯선 한국 땅에 발을 들였다. 그를 맞은 것은 좌절, 좌절, 또 좌절이었다. 그 끝에서 발견한 자신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한국인들을 어느새 경멸과 적의와 원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혔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자기 안에 세워둔 벽, 서구 중심적 사고와 인종적 선민의식이 한국인들과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었을 줄이야. 아프고 부끄러웠지만 새로운 자아발견의 시간이었다. 선교사 하디의 이야기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직한 용기는 성령의 놀라운 감염력을 증명해냈다. 신분과 성별이 인간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사회에서 ‘넘사벽’이던 차별의식이 점차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대중 집회는 신분 성 지역 나이 교파의 벽을 넘어 서로 소통하고 화해하는 집단 체험의 공간이 되었다. 모든 성과가 숫자로 환산되는 시스템에 익숙해진 탓인지, 현대 교회는 이 사건을 종교계의 ‘성공신화’쯤으로 기억하고 교회의 성장 불씨를 다시 살려내 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100년 전 한국에 찾아온 성령의 선물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역사가 기록하는 성령은, 힘이 있되 폭력적이지 않고 강력하되 일방적이지 않으며 때를 기다리되 멈춤이 없다. 분단 33년 만인 1986년, 제3의 공간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이 처음 만나 얼굴을 마주한 시간의 기록도 이를 증언한다. “처음에는 가볍게 악수하는 정도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어 서로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 마음이 하나가 된 겁니다. 성령의 역사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이었지요.” 형제를 증오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던 남북 기독자들이 용기를 내고 세계교회가 그 용기에 힘을 보태 일궈낸 열매였다. 30년 넘는 시간의 공백을 한순간에 넘어서게 한 이는 러시아정교회 사제였다. “지금 봐서는 남북통일이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38선이 문제겠습니까.”

따뜻한 종교보다 위대한 종교는 없을 듯하다. 내 안에 자리한 벽을 눕혀 화해의 길을 내는 일이야말로 성령이 하시는 거룩한 일이며, 그 일에 협력하고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성령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희정(감신대 객원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