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마을에 세워진 십자가 등대가 되다

[건축주 하나님을 만나다] <11> 화천 상서제일교회

상서제일교회 이강호 목사가 생각하는 교회 공간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곳이며 연약한 이들을 위한 곳이다. 건축 형태로 노출 콘크리트를 꼽은 이유다. 노출 콘크리트는 낮에는 햇빛, 밤이면 조명을 받아 마을을 등대처럼 밝힌다. BoH건축 제공

‘건축’은 시골교회와 작은 교회가 시도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재정은 열악했고 안팎에선 ‘굳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시골교회와 작은 교회 건축을 주로 한 BoH건축 오종상 소장의 말이다. 건축 상담을 한 뒤 성사된 건 10건 중 2건도 되지 않았다.

강원도 화천군 파포리의 상서제일교회도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교회는 시골교회, 작은 교회의 단점을 장점으로 살려 건축했다. 땅이 넓으니 너른 마당을 갖게 됐고 재정이 없으니 건물은 딱 필요한 크기로 세워졌다. 시골 마을에 어둠이 깔리면 교회 건물엔 조명이 켜졌다. 노출 콘크리트는 빛을 받아 주변을 밝혔다. 이강호 목사는 “마을의 등대 같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시골교회, 건축을 결심하다

상서교회는 북위 38도 위쪽이라 휴전선이 생기기 전엔 북한 땅이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곳에 1958년 초가로 교회를 세웠고 71년 성도들이 직접 돌을 날라 교회를 지었다. 2014년 부임한 이 목사는 시골교회의 공통 과제인 ‘존속 위기’를 고민하다 건축을 생각했다.

50년 넘은 교회 건물은 비만 오면 곳곳이 샜고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장소도 없었고 젊은 사람들은 교회 오는 걸 꺼렸다.

이 목사는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왜 건축하냐’였다. 하나님이 성막을 주신 이유를 생각했고 교회는 연약한 이들의 공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건축을 결정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목사는 “한 권사님이 수표를 건넸는데 마지막 자리가 1원이었다. 갖고 있는 돈을 다 주신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권사님이 주신 헌금에선 장판 냄새가 났다. 숨겨둔 쌈짓돈”이라고 했다.

도면 속 박공지붕은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 맞춤이다. 예배당과 식당은 같은 건물에 있지만 두 개의 지붕으로 공간 분리의 효과를 냈다. BoH건축 제공

타지로 간 청년은 적금을 부어 보냈고 화천제일교회 등 지역교회들도 힘을 보탰다.

마을 사람들은 땅을 고르고 비닐하우스를 세워 예배할 임시 공간을 만들었다. 이 목사는 “비닐하우스는 방음이 안 돼 온 마을에 예배 소리가 들리는데 타박하는 사람이 없었다. 건축하면 외롭다고들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목사의 요즘 고민은 ‘교회 안에 무엇을 담을까’다. 이미 ‘코코스 나눔학교’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코코스는 히브리어로 ‘밀알’이다.

이 목사는 “중대장 허락을 받아 지역 아동 돌봄을 계획한 부대와 학교를 운영했다”며 “아이들은 24명인데 선생님인 군인은 33명이라 1대 1 과외를 했다”고 말했다.

최근 이 목사는 인근 부대 부사관과 가족을 보고 있다. 이 목사는 “30~40대인 부사관은 10년 정도 부대에서 근무한다”며 “그들의 신앙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주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도 모색하고 있다.

시골교회, 단점은 장점이 됐다

건축의 시작은 노출 콘크리트였다. 이 목사는 정직하고 포장 없는 교회에 적합한 형태라 여겼다. 그러다 노출 콘크리트로 작은 교회, 시골교회를 건축한 오 소장을 알게 됐다.

이 목사는 “작은 교회, 시골교회는 돈이 안 돼 다들 건축을 꺼린다. 오 소장이라면 우리를 이해하겠다 싶어 건축을 요청했는데 거절하더라”며 웃었다.

거절의 이유는 명확했다. 노출 콘크리트는 시골의 주거문화와 어울리지 않고 관리도 어려웠다. 재정도 고려해야 했다.

이 목사는 한달간 성도들의 의견을 구했다. 고민의 과정을 들은 오 소장이 건축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나눈 첫 질문은 “어떤 교회를 생각하느냐”였다. 이 목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교회”라고 답했다.

오 소장은 두 개의 단층 건물을 일렬로 세우고 마당을 배치했다. 앞마당을 지나면 예배당과 식당이 있는 건물이 나오고, 중간 마당을 지나면 사무실과 소예배실이 있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 소장은 “정원이 넓으면 관리가 어려워 마당을 나눴다. 도시에선 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마당은 건물 두 개를 분리했지만 두 건물의 우측 벽을 따라 회랑이 감싸고 있어 하나로 보였다. 자연스럽게 가운데 마당은 건물 안 중정이 됐다.

교회 건물로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공간이 식당이다. 이 목사는 “말씀을 주시고 먹이신 다음 파송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예배 후 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식당에서 교제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교회 건물은 필로티 방식의 회랑을 넘어 앞마당을 거쳐 들어갈 수 있다. 잔디는 농사 베테랑인 성도들이 심었다. 화천=신석현 포토그래퍼

작은 교회를 위한 배려도 곳곳에 보였다. 그중 십자가 탑은 교회 기둥인 동시에 회랑 위 필로티로 연결했다. 덕분에 비가 와도 성도들은 우산 없이 회랑을 거닐 수 있게 됐다. 오 소장은 이를 ‘필로티 방식의 회랑’이라 칭했다.

설계부터 십자가 탑을 넣은 이유도 있었다. 오 소장은 “건축을 끝내고 십자가 탑을 세우면 비용이 추가되는데 설계 때 넣으면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며 “필로티 형식으로 확보한 공간은 건축법상 바닥면적을 산정할 때 포함되지 않아 시공비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난간 끝에 덧댄 물끊기는 비나 눈이 벽을 타고 흘러 얼룩지는 걸 막는다. 관리가 어려운 시골의 작은 교회를 위한 설계사의 배려다. 화천=신석현 포토그래퍼

관리의 편리함도 고려했다. 노출 콘크리트는 먼지 섞인 빗물이나 눈이 벽면을 타고 흐르면 얼룩이 생긴다. 물청소나 방수 작업할 여력이 없다고 보고, 물이 벽을 타고 흐르지 않도록 건물의 난간 끝에 물끊기를 덧댔다. 이를 위해 난간 끝을 갈아 수평을 맞췄다.

지붕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삼각형의 박공지붕을 선택했다. 이 목사는 “수분을 머금은 무거운 눈이 내리는 곳이라 나무가 부러지고 지붕이 무너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눈길을 끄는 건 두 개의 건물에 3개의 지붕이다. 같은 건물에 있는 예배당과 식당에 지붕을 따로 얹어 공간 분리의 효과를 냈다.

오 소장의 세심함도 돋보였다. 건축 현장의 철판으로 만든 예배당 십자가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다. 정면으로 보이는 십자가의 두께는 10㎜에 불과한 데다 벽과 같은 하얀색이다. 위아래로 향하는 십자가 면은 20㎝다. 이 목사는 “십자가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데 굳이 보일 필요가 있나. 오히려 빛을 받고 그림자를 드리우는 십자가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공지붕 형태가 드러나는 예배당은 측창과 천창으로 자연빛이 들어오면서 묵상의 공간이 됐다. 공사장 철판으로 만든 소박한 십자가는 빛을 받아 경건함이 배가됐다. 화천=신석현 포토그래퍼

조명에도 공을 들였다. 예배당과 식당 천장은 박공지붕에 맞춘 사선 구조라 설치에 어려움이 있었다. 식당엔 건축 현장의 파이프로 디자인해 만든 조명을 달았다. 예배당 천장엔 철판을 덧대고 조명이 들어갈 공간엔 홈을 팠다. 천장 작업만 2주 걸렸다. 예배당 우측 하단엔 측창, 강대상 뒤 하단엔 천창을 만들어 자연광을 끌어왔다.

오 소장은 “설계할 때 조명 손잡이 등을 두루뭉술하게 적어 추가 비용이 발생하거나 설계한 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며 “브랜드, 모델명까지 다 적으니 문제없었다”고 전했다.

이강호 목사가 부대 철조망과 탄피로 만든 십자가. 화천=신석현 포토그래퍼

회랑 끝 난간에 세워진 이 목사의 십자가 조형도 눈길을 끌었다. 십자가는 철조망, 십자가를 세운 기둥은 탄피다.

건축을 수월하게 한 건 또 있다. 오 소장은 “건축주와 시공사는 마찰하기 마련인데 목사님은 재정이 어려운 시공사를 위해 기도하며 기다려줬다”고 말했다.

그럴 만했다. 이 목사에게 건축 현장은 전도의 장소였다. 조선족 인부에게 번역 앱으로 복음을 전하니 3명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했다. 현장소장은 어머니가 대형교회 집사였다고 털어놨다.

이 목사는 “시공사 대표는 교회와 일하다 상처를 경험했다. 그래서 계약할 때 특약에 ‘교회 때문에 상처받은 거 우리 때문에 복 받으세요’라는 걸 넣었다”며 “그는 회복됐고 멈췄던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지금도 시공사 대표는 이 목사와 연락하며 지낸다.

마당의 잔디심기는 성도들에게 의미 있는 과정이 됐다. 이 목사는 “기술이 없어 건축에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성도들이 유일하게 참여한 게 잔디심기였다”며 “평생 벼를 심어 온 그들은 탁월한 경력자였다. 잔디를 깔면서 기뻐하셨다”고 말했다.

화천=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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