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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낭비된 믿음

조효석 사회부 기자


1945년생 박모 할머니를 만난 건 지난달 어느 주말이다. 하루 수십만명을 덮치던 오미크론 변이의 기세가 사그라들고 있던 때였다. 서울 마포구의 아파트촌 노인정 앞 화단에서 모종을 심던 할머니는 구부정한 자세로 화분에 핀 노란 팬지꽃을 매만졌다. 당시만 해도 노인정이 다시 문을 열기 전이라 건물은 텅 비어 있었다. 늦은 봄 햇살을 받으며 손을 놀리는 모습이 따뜻해 보였다.

때마침 정부가 노인들에게 네 번째 백신 접종을 권하고서 몇 주가 지난 즈음이었다. 당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궁금해 할머니께 말을 걸었다. “백신이 남아도니까 폐기처분 하기 싫어서 억지로 맞으라는 거잖아.” 대뜸 나온 반응은 짐작보다 격했다. 할머니는 노인정 동료 중 정부 말대로 4차 접종을 한 사람은 1명밖에 없다며 주변에서 들은 부작용 사례를 흥분한 목소리로 늘어놨다.

이달 강원도 평창에서 만난 60대 중반 택시 기사 남성의 이야기는 더했다. 1차 접종 뒤 한참을 앓아누웠음에도 별걱정 없이 2차 접종을 했지만 접종 직후 멀쩡하던 한쪽 다리에 중풍 증상이 왔다. 의사는 인과성을 찾기 힘들다며 부작용 소견서를 써줄 수 없다 했다. 시간이 지난 뒤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예전처럼은 걷지 못한다고 했다. 물론 그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덧 무더워진 거리에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드러낸 이들이 종종 보인다. 밤 12시 넘어 술자리를 끝내고 택시를 잡으려 길게 늘어선 취객들도 이제는 서먹하지 않다. 삭막하던 경기장 관중석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다. 콘서트장에도 사람들이 물에 흠뻑 젖어 환호할 준비를 하고 있다. 두 달 전 당시만 해도 생뚱맞게 들리던, “임기 내 일상으로 돌아가게 돼 감개무량하다”는 전임 대통령의 말이 현실이 된 것만 같다.

‘일상’이 유지되는 시간은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가을철, 이르면 늦여름 재유행을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정부조차 하루 확진자 15만명 규모의 재유행이 닥칠 거라 내다본다. 그때 가서 또다시 어떤 거리두기를 할지, 어떻게 백신을 접종할지, 병에 걸려도 쉴 수는 있을지, 치료제는 잘 지급될지 알 방법이 없다. 새 정부가 강조하는 ‘과학적 방역’이 전 정부와 얼마나 다를지는 아직 모른다.

국가는 재난이 닥칠 때면 신뢰를 공공재로 가져다 쓴다. 이번 유행에서는 특히 그랬다. 시민들은 정부를 신뢰하고서 수차례 백신 접종을 했고, 답답해도 마스크를 썼으며, 가족이나 친구와의 약속도 기약 없이 미뤘다. ‘방역패스’라는, 사상 초유의 논쟁적인 수단도 감수했다. 불행히도 재난은 일시적이지 않았고 소모해야 했던 신뢰는 지나치게 컸다. 정부의 반복된 독려에도 30%대에 몇 달째 멈춘 노령층 백신 접종률이 그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얼마 전 방역 당국의 한 공무원을 인터뷰해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에는 백신 접종에 대한 언급이 담겨 있었다. 다음 날 그가 거의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와 메일 등 온갖 수단으로 위협이 쇄도했다고 했다. 비슷한 일은 많다. 언제부턴가 접종을 언급한 정책이나 전문가 제언을 담은 기사를 쓸 때마다 포털 댓글난에는 연령대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욕설과 비아냥이 셀 수 없이 달린다. 신뢰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정책 근거로 삼은 ‘과학적’ 숫자를 공개하는 것만으로 신뢰가 쌓이진 않는다. 치명률이든 중증화율이든, 조사 중인 항체양성률이든 마찬가지다. 정책을 결정하는 건 결국 사람의 일이고, 결정을 따르는 건 그를 향한 믿음, 나아가 이에 따른 책임의 문제라서다. 전임 대통령이 백신 부작용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의 시위에 시달리는 건 방역 역시 정치와 통치, 즉 믿음과 책임의 영역으로 귀결함을 보여준다. 취임 이래 최저 지지율을 경신 중인 새 정부와 대통령이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우리의 가을도 달려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조효석 사회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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