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게 신기해” 실험실서 생환한 아홉 비글 이야기 [개st하우스]

3년간 동물실험 받던 9마리 비글 연구소 설득해 시민단체 ‘동행’서 구조
비좁은 철창 나갈 때 좋은 기억 있는 파란 양동이에 실려 실험실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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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봉사자가 지난 5월 23일 A연구소에서 구조된 실험실 비글과 입을 맞추고 있다. 이날 구조된 비글은 모두 9마리로 지난 3년간 소화제 관절약 등을 먹고 혈액검사를 하는 약동성 실험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주=최민석 기자

“비글들은 파란 양동이에 담기는 걸 좋아했어요. 실험실로 향하는 그때만큼은 비좁은 철창에서 나올 수 있었거든요. 비글의 99.9%는 실험이 끝나도 살아서 나갈 수 없어요. 사회적 비난을 의식한 실험실 측이 내부에서 덮고 싶어 하거든요. 몇 년간 얼굴을 보고 밥을 챙겨주던 애들을 하루아침에 죽여야 한다니…. 실험실 근무자들은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됩니다.”

시민단체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동행)의 이정현(51) 수의사가 전한 이야기입니다. 동행 회원들은 지난 5월 23일 동물실험을 하는 A연구소를 방문했습니다. 환호성과 함께 등장한 것은 다섯 개의 파란 통, 그 안에 담긴 9마리의 실험실 비글이었죠.

“잔뜩 굳어있네. 바깥세상은 처음이지. 정신 차려. 이제는 자유야.”

아홉 마리 비글이 파란 통에 매달려 연구소 밖으로 나섰습니다. 비글들은 눈 앞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노란 들꽃을 찬찬히 둘러봤습니다. 이들 비글은 지난 3년간 실험실에서 약물 투여와 혈액검사를 반복하는 약동성(의약품동등성) 실험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마리인 ‘화성이’의 오른쪽 귀 안쪽에는 파란 글씨로 ‘97557’ 실험견 번호가 새겨져 있죠. 실험실 비글들의 지난 삶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비글들은 30분가량 산책한 뒤 이동장에 담겨 시민단체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동행)의 위탁보호처로 옮겨졌습니다.

비글들의 극적인 해방에는 A연구소 동물실험윤리위원이었던 정현씨의 공이 컸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안락사됐을 9마리 비글을 시민단체에 기부하도록 연구소 측을 설득했습니다. 정현씨는 “비글을 돌보던 연구원은 아홉 마리에게 각각 이름을 지어주고 틈틈이 놀이도 제공했다. 덕분에 비글들의 사회성이 뛰어나 구조 작업이 수월했다”고 전했습니다.

실험의 끝은 해부 혹은 안락사
파란 잉크로 실험견 번호가 새겨진 비글의 오른쪽 귀.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정현씨는 12년 경력의 동물실험윤리위원입니다. 동물보호법에서 규정한 동물실험의 3R 원칙, 즉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고(Refine) 실험 횟수를 줄이고(Reduce) 대체할 방법을 찾도록(Replace) 기업과 대학 등 연구시설을 감독하는 역할을 합니다.

윤리위원의 법적인 권한은 크지 않습니다. 윤리위원의 지적에는 아무런 강제성이 없습니다. 오히려 윤리위원이 기업명과 실험내용을 언론 등에 누설하면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합니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정현씨는 사육 및 실험방식의 개선을 위해 꾸준히 내부 목소리를 냈습니다. 정현씨는 “내 역할이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자괴감도 들지만 동물실험의 감시자 역할을 한다는 마음으로 12년째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던 올해 초 정현씨는 A연구소에 실험종료가 임박한 10마리 비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느 실험실 비글들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온 녀석들이었죠. 공개된 정보는 제한적이었지만, 2018년 말 중국의 실험견 공장에서 태어나 생후 6개월쯤 실험실로 팔려온 뒤 3년간 좁은 철창에서 지내며 약 먹고 혈액검사 하는 약동성 실험을 수차례 받았다고 했습니다.

비글 10마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독성 없는 소화제와 관절염 및 당뇨병 치료제 등을 주입받아 건강에 이상은 없었고, 1년에 한두 차례지만 정현씨의 도움으로 연구소 주변을 산책하는 행운도 누렸으니까요.

실험실 비글 대다수는 안락사로 삶을 마감합니다. 동물실험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워낙 거세다 보니 기업으로서는 실험동물을 공개하기보다 안락사, 해부 등으로 비공개 처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A연구소도 처음에는 비글 생환에 난색을 보였다고 합니다. 정현씨는 “비글들에게 삶의 기회를 준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연구소 측에서는 ‘왜 동물실험을 했는지’ ‘여태 몇 마리나 죽였는지’ 같은 비난 섞인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며 두려워했다”고 전합니다.

동물구조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 유영재 대표는 “비글 구조준비를 모두 마친 뒤 기업 윗선에서 사회적 비난을 의식해 막판에 엎는 경우가 90%가량 된다. 동물실험을 최소화하도록 비판해야겠지만, 실험 자체를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실험실 비글이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차마 안락사할 수 없었던 실험실 측에서 비글들을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고도 했습니다.

“수고했어, 잘가”…실험실 떠나는 아홉 비글
비글들이 파란 양동이에 실려 구조되는 모습.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제공

정현씨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거듭된 요청에 A연구소는 실험이 끝나는 대로 10마리 비글을 동행 측에 기부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태양 지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동행은 태양계에서 따온 이름을 붙여주고 비글들의 생환을 기다렸지요.

약속했던 그날이 왔습니다. 지난 5월 23일 비글들은 마침내 동행 회원들의 품에 안겼습니다. 다만 이날 모습을 드러낸 비글은 10마리가 아닌 9마리였습니다. 생환을 10여일 앞두고 비글 해왕이가 숨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잘가, 수고했어.” 연구원들의 작별인사를 뒤로하고 아홉 마리 비글은 연구소 밖으로 나섰습니다. 비글들은 흙바닥을 밟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고 해요. 불어오는 바람소리, 흙의 부드러운 감촉까지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여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내 비글 특유의 명랑함으로 들판 이곳저곳을 누비며 빠르게 바깥세상에 적응했습니다.

가장 다행스러웠던 점은 건강이었습니다. 동물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한 결과, 비글들은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었죠. 현재는 중성화수술까지 마치고 경기도 양주의 위탁보호처에서 지내며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홉 비글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지난 14일 국민일보는 경기도 양주의 위탁보호소에서 아홉 비글을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11년차 유기견 행동전문가 권미애씨도 동행해 비글들의 입양 적합도를 평가했습니다. 아홉 개의 견사 문을 열자 보호소 마당에 비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취재진의 냄새를 맡고 선뜻 품에 안겼죠. 9마리가 한 번도 짖지 않고 사료를 나눠 먹을 정도로 성격이 유순했지요.

비글들은 예방접종을 마치느라 그간 산책을 못 했더군요. 취재진은 유난히 활발한 화성이와 수성이를 데리고 보호소 밖으로 나섰습니다. 사실상 구조 이후의 첫 산책이었죠.

20미터도 가지 못하고 화성이가 주저앉았습니다. 미애쌤은 “흙바닥의 감촉, 바람소리 같은 걸 무서워한다. 산책줄을 당기지 말고 기다려줘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15분 뒤 화성이는 다시 용기를 내 숲길로 나아갔습니다. 미애쌤은 길가의 풀과 꽃들을 비글들에게 내밀었고 두 비글은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았답니다.

아홉 비글은 아직 주변 환경의 감촉을 낯설어합니다. 미애쌤은 해법으로 촉감 교육을 준비했습니다. 플라스틱 담요 은박지 비닐 유리판 등 다양한 물건을 밟고 냄새 맡으며 익숙해지는 교육으로, 생후 1개월 이내의 퍼피 및 구조된 실험견 등에게 유용한 과정이지요. 비글들은 물건들을 밟고 핥으며 촉감교육을 즐겼습니다.

실험실을 탈출한 아홉 비글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비글의 입양 및 임시보호, 후원을 희망하는 분들은 아래 내용을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3년의 기다림 끝에 자유를 얻은 실험실 비글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체중 8~11kg, 중성화 수컷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음
-잔짖음, 입질이 없어 실내생활에 적합
-바깥 세상이 낯설고 촉감을 익히는 중

■비글 화성이, 수성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93번째 견공입니다.(72마리 입양완료)
두 비글의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시민단체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동행)이 비글의 입양을 진행합니다
-방법 :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의 포털 다음 카페에서 입양신청서를 작성


양주=이성훈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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