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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다시 때는 유럽… 핀란드 녹색당도 친원전 유턴

[리셋! 에너지 안보] <1> 에너지 패권 경쟁 본격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 에너지 지형은 ‘격랑(激浪)’에 휩싸였다. 친환경을 강조하던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공급난에 화석연료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상품 인사이트는 내년 서부 유럽의 연간 석탄화력발전 발전량이 201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13GWh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단기적 움직임과 함께 중장기적 대응에도 변화 분위기가 읽힌다. 친환경 에너지 뒤로 제쳐놨던 원전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다른 재생에너지와 수소의 비중을 더 빨리 늘리겠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경제성과 지속가능성 사이에서 움직이던 에너지 패러다임의 무게 추가 ‘에너지 안보’로 옮겨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수가 된 가장 최근의 ‘사건’은 러시아가 지난달 11일 발표한 천연가스 수출 통제 정책이다. 유럽연합(EU)의 대러시아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고려하면 이 조치는 치명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지난달 기준 석탄의 경우 46.7%, 천연가스는 41.1%를 러시아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러시아 발표 이후 EU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는 모습이다. 먼저 행동에 나선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문을 닫았던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운용 중인 26GW 규모 석탄화력발전 설비용량을 연말까지 34GW로 8GW(30.8%)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은 지난 3월 미국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시급한 에너지 수입선부터 바꾸겠다는 것이다.

원전을 재조명하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핀란드 내 원전 반대에 앞장섰던 녹색당은 지난달 22일 당 대회를 열고 2023~2027년 공약을 확정했다. 공약에는 지금까지 기조와 정반대인 ‘친원전’이 포함됐다. 영국도 지난 4월 7일 발표한 ‘영국 에너지 안보 전략’에서 원전 확대를 표방했다. 2030년까지 기존 원전 외에 8기의 신규 원전을 짓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2050년에는 영국 내 전력 수요의 25.0%를 충족할 수 있는 24GW 규모의 원전 설비용량을 갖추겠다는 목표다.


원전은 유럽 외 국가에서도 에너지 안보의 중추로 떠오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400㎿급 신규 원전 2기의 추가 건설 계획을 재가동했다. 최근 국제적 에너지 공급난 사태의 ‘원흉’인 러시아도 자국 내 원전 인프라를 더욱 늘리기로 했다. 2045년까지 최대 16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기준 19.7%인 원전 발전량 비중을 25.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전(SMR)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공화당 소속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는 지난 2월 초소형 원자로 인허가 간소화 법안에 서명했다. 루마니아의 국영 원자력기업은 SMR 도입을 위해 미국 뉴스케일파워(Nuscale)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프랑스는 체코, 핀란드와 SMR 규제 공동 검토에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한국도 SMR에 관심 있는 국가 중 하나다. 기술 면에서 앞서 있는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국정과제에 담았다. 연구개발(R&D)에 4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원전이 에너지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는 현 에너지 공급원 구도를 단기간에 바꾸기 쉽지 않아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연간 발전량의 과반은 화석연료에 의존했다. 석탄화력발전과 액화천연가스(LNG)발전의 비중이 각각 37.8%, 25.9%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23.2%로 과거보다 높아졌지만 급격한 속도로 화석연료를 대체하기는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원전과 화석연료 발전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수급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28일 “에너지 공급 안정성과 기후변화 대응 면에서 원전에 대한 관심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원전의 재발견’ 국면에서 한국은 유리한 위치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기준 국내 연간 발전량의 27.4%를 원전으로 충당했다. 윤석열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진흥을 약속했다. 수명이 다한 노후원전의 계속운전 요건을 완화한 점이 대표적이다. 다른 나라가 뒤늦게 대안으로 살펴보기 시작한 원전을 이미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화석연료 사용량도 여전히 많다. 석탄화력발전과 LNG발전 비중은 지난해 기준 34.3%, 29.2%로 전 세계 평균치와 비슷하다. 화석연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점을 고려할 때 각국이 에너지원을 무기화할 경우 위기를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형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려면 적절한 원전 활용과 함께 수소와 같은 신에너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도 늘릴 필요가 있다. 지난해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세계 재생에너지 평균치(23.1%)에 한참 못 미치는 7.5% 수준이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중장기 에너지 안보 전략 중 하나로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아우르는 ‘에너지 믹스(Mix)’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상열 에너지경제연구원 미래전략팀장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연계성, 호환성 면에서 아직 문제가 있어 이를 해결해나가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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