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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 ‘국민제안’, 낮아진 문턱 “좋아요”, 공론화 약화 “싫어요”

尹정부가 신설한 ‘국민제안’ 사이트
‘20만명 동의해야 답변’ 조건 없애고
제안내용·답변 모두 비공개 전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윤석열정부가 문재인정부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대신할 대국민 온라인 소통 창구로 ‘국민제안’ 사이트를 신설해 지난 23일 운영을 시작했다. 국민이 정부에 의견을 직접 제시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기존 국민청원과 유사하지만 청원자들 반응은 엇갈린다. 답변 기준이 완화된 점을 반기면서도 게시글 내용이 비공개인 점 등 공론화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1일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보면 작성자들 글이 가려진 상태로 돼 있다. 지난 정부의 국민청원은 사전동의가 100명 이상이 되면 전 국민이 청원 내용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국민제안은 제안 내용과 정부 답변 모두 당사자 외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국민청원을 통해 자신의 문제나 사연이 공론화되고,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등 파급 효과를 경험했던 이들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공론장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쉽다는 반응을 보인다.

역대 국민청원 동의 수 1·2위를 차지하고, 20만명 이상 청원만 9건이었던 ‘n번방’ 관련 청원이 대표적이다. ‘n번방’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은 “2019년 9월 처음 문제 제기를 했지만, n번방 관련 청원이 2020년 3월 국민청원 동의 수 1위를 달성하자 ‘n번방 방지법’ 등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 등 직접적인 변화가 생겼다”며 “우리의 기록이 힘을 가질 수 있게 한 건 국민청원 게시판이라는 공론장이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확장성 심근증이라는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은 어린 딸이 보험 혜택을 못 받아 억대의 수술비용을 내야 했지만, 총 13만명이 동의한 국민청원을 통해 해당 질환 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이끌어낸 노우성(38)씨의 의견도 비슷했다. 그는 “비록 우리 딸은 건보 적용 이전에 수술을 받아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국민청원을 통해 다음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돼 보람을 느꼈다”고 돌이켰다.

대국민 온라인 소통 창구 ‘국민제안’ 홈페이지

반면 20만명 이상 동의해야 답변을 들을 수 있었던 국민청원과 달리 상대적으로 답변 문턱이 낮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20만명 동의 조건을 폐지한 대신 행정안전부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유효한 제안’이라고 판단하면 답변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국민청원이 ‘동의 20만명’이라는 기준 탓에 답변율이 0.026%에 불과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북 전주에 사는 송모(54)씨는 지난 3월 야간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보행로와 자전거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빠르게 달려오던 자전거와 부딪힐 뻔했다. 송씨는 전조등을 달지 않은 자전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자전거도로 표시도 야광으로 잘 보이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하고 싶었지만 20만명 동의 조건이 걸려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송씨는 “새 정부의 국민제안은 별도의 답변 기준이 없다고 해 다시 올려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청 내용 비공개 원칙이 과거 국민청원 사이트에서 벌어졌던 진영 간 대결 증폭과 같은 부작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어떤 제안에 답할 것인지 선택하는 기준이 모호한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제안 시스템이 비공개로 운영된다면 배제돼야 할 혐오성 청원이나 사실 확인이 안 된 일방적 주장이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유통됐던 부작용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것”이라면서도 “다만 행정기관 판단에 따라 답변이 곤란한 제안은 무시하고 편한 제안만 취사선택해 대응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답변 기준을 구체화하거나 외부인사로 기구를 구성해 특정 제안에 대한 답변을 강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론화 기능이 있었다고 하지만 결국 결집력이 좋은 집단이나 동원력이 좋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는 측면이 있었다”며 “관건은 국민제안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느냐인데, 공무원들이 임의로 답변 기준을 정한다는 건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안이 접수되면 답한다는 일관된 원칙을 세우거나, 시민 대표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꾸려 답변이 필요한 제안을 선정하는 절차를 두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했다.

행정 처분에 대한 의견을 내는 ‘민원’, 정부 시책에 대한 의견을 내는 ‘제안’, 법률과 조례 등의 제·개정을 요구하는 ‘청원’ 중 하나로 제시 내용을 한정한 국민제안 운영 방침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주제를 한정하지 않은 국민청원은 국민들에게 ‘대통령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하는 기능을 했다”며 “국민청원의 모델이었던 미국의 ‘위더피플’도 행정부 소관이 아닌 건 다 걸러냈다”고 진단했다. 반면 이 교수는 “주제 한정 없이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정치적인 이해도가 높지 않은 시민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어떻게 제안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반론을 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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