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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슬로플레이션’ 덮친데 ‘애그플레이션’ 겹치나

고물가 복합위기 해법 고심

연합뉴스

한국 경제가 저성장 속 물가가 상승하는 슬로플레이션에 접어든 가운데 ‘애그플레이션’(국제 식량가 상승이 국내 식료품·외식 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까지 겹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물가에 대한 정부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을 만나 “경제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다. 고물가 속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경종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면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물가”라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르면 이달, 늦어도 7~8월 중에는 6%대를 기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6%대 물가 상승률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덮쳤던 2008년 7월의 5.9%보다 높은 수치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월 0.9%에서 같은 해 10월 3.2%까지 뛴 뒤 지난 5월에는 5.4%까지 치솟았다.


고물가를 완화할 정책 카드는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뿐이다. 지난 4·5월 기준금리를 연달아 올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남은 하반기 인상에 속도를 더 낼 전망이다.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 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급진적인 관측까지 나온다.

애그플레이션 그림자까지 드리워져

최근 한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짙어지고 있지만 사실 현 상황은 슬로플레이션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저성장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현재 잠재성장률 수준을 겨우 웃도는 성장세를 보이는 실물경제는 갈수록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2020년 3분기 이후 계속 100을 상회하고 올해 1분기에는 115.7까지 상승했던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가 2분기 96.1로 급락한 점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엔진이 점차 식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애그플레이션 조짐까지 보인다. 지난 5월 가공식품 가격 상승률은 7.6%로 2012년 1월(7.9%) 이후 10년4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물류·인건비가 급등한 가운데 한동안 계속됐던 국제 식량가 상승세 영향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상승 폭이 크게 확대됐다. 외식물가도 각종 원가 상승에 따라 인상 압력이 누적된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 증가까지 겹쳐 상당 기간 높은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식료품·외식 물가를 구성하는 품목 대부분은 한 번 오르면 상황이 달라져도 가격이 쉽게 하락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소비자 구매 빈도가 높아 기대인플레이션(소비자가 향후 1년간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예상하는 지표)을 끌어올리는 결과도 낳는다. ‘식료품·외식 물가 상승→기대 인플레이션율 상승→물가 재상승’의 악순환이다. 식료품·외식 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저소득층의 피해가 특히 클 전망이다.

한은, 경기 둔화 감수 ‘빅스텝’ 가능성

고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기준금리 인상 외에는 마땅한 해법이 없다. 가계 소비, 기업 투자를 줄여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원·달러 환율을 낮춰 수입품 가격을 인하하는 방식이다. 독일 연방은행은 석유 파동 등으로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놓였던 1970년대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인상해 물가 불안 심리를 조기에 차단했다.

‘유가 등 일시적인 충격에 의해 물가가 단기적으로 오를 수 있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인플레이션은 결국 통화 완화정책에 의해 나타난다’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 결국 석유 파동이 세계 경제를 요동치게 했던 1973~1981년 독일의 평균 물가 상승률(5.2%)은 같은 기간 대응이 상대적으로 늦거나 약했던 미국(8.3%) 영국(14.8%) 대비 안정적이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5월 26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국민일보DB

한은이 주식·부동산·암호화폐 등 자산시장 충격과 경기 둔화를 감수하면서까지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6월 21일 물가 안정목표 운영상황점검 간담회에서 “국내외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기대인플레이션 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할 수 있다”면서 “물가 오름세가 계속되는 국면에서는 상승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세계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한은의 기준금리가 6개월 뒤 3%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기준금리가 1.75%이므로 올해 네 차례 남은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에서 금통위가 한번은 0.5% 포인트를 올릴 것이라는 의미다. 한은이 1999년 기준금리를 주요 통화정책 수단으로 삼은 이래 한꺼번에 0.5% 포인트를 올린 적은 없다. 미국계 투자은행(IB) 씨티그룹과 JP모건도 한은이 7월 중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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