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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끝장”… 여야 모두 공천권 걸고 ‘살벌한 내전’

18~20대 총선 공천학살로 본 ‘정치의 세계’
충신 챙기고 반대파 숙청… 뿌리깊은 계파정치 산물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차기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 차기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대표 자리를 놓고 집안싸움이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친윤석열계와 이준석 대표 간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 27일 이 대표는 당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같은 날 친윤계 핵심인 장제원 의원은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을 열면서 당내 세 과시를 본격화했다. 이 대표의 성상납 의혹을 둘러싼 당내 공방 이면에도 두 세력 간 당권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유력 당권 주자인 이재명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놓고 친이재명계와 친문재인계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민주당 워크숍에서 친문계 핵심인 홍영표 의원은 이 의원 면전에서 전대 불출마를 요구하기도 했다. 당대표 선출 방식, 지도부 체제 유형 등을 놓고도 두 계파 간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공천권이 대체 뭐길래

공천권은 정당에서 선거에 출마할 당원을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권리를 말한다. 유권자 대다수는 후보자 개인의 능력과 공약에 대해 자세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소속 정당을 고려해 투표한다. 정당의 공천 여부가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공천권은 예전부터 정당 내 최고 권력자, 즉 ‘제왕적 총재’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후보들을 택하는 식으로 당내 권력을 관리하는 데 활용해 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 등 5·16 쿠데타 세력이 결성한 민주공화당은 1963년 당헌에 ‘공천권은 당 총재에게 있다’고 명시했다. 김대중·김영삼·김종필 ‘3김’도 충신 그룹 육성과 정치자금 확보 등에 공천권을 활용했다.

3김 시대가 저물고 2000년대 민주화 흐름이 가속하면서 정당 공천에 일반 당원이나 유권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각 정당이 선거 후보 선정 과정에 ‘상향식 경선’을 도입한 것이다.

친박-친이 공천 혈투

그러나 공천권은 이후에도 여전히 유력 정치인의 ‘충신 챙기기’ 및 ‘반대파 찍어내기’에 악용됐다. ‘전략 공천’이란 명목으로 계파 보스에 의해 하향식 공천이 이뤄지기 일쑤였다.

공천권이 계파 간 권력 다툼의 도구가 된 대표적인 사례는 18~20대 총선에서 친박근혜계와 친이명박계가 벌인 ‘공천 파동’이다.

2008년에 치러진 18대 총선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압승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두 달 만에 열린 선거였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주류였던 친이계는 친박계 의원들을 무더기로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홍사덕·김무성·서청원 등 친박 중진은 물론 김재원 등 소장그룹도 ‘공천 학살’을 당했다. 이에 친박계에선 ‘탈박’(친박에서 이탈) 흐름도 이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공천 명단이 확정된 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크게 반발했다.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 의원들은 결국 탈당한 후 ‘친박연대’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들을 향해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다. 총선 결과 친박연대는 14석을 확보했다.

이후 당권이 친박계로 넘어가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2012년(19대)과 2016년(20대) 총선에선 친박계에 의한 친이계 공천 학살이 이뤄진 것이다. 18대 총선 때 ‘탈박’했던 이들이 친박으로 돌아오면서 ‘돌박’(친박에서 이탈했다 돌아온 친박), ‘짤박’(잘린 친박)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특히 20대 총선에선 친이계뿐 아니라 유승민 의원 등 비박근혜계까지 아울러 대대적인 물갈이가 진행됐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총선을 앞두고 “국민을 위해서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부탁한다”고 말해 ‘진박(진짜 친박) 감별’ 논란이 불거졌다. 공천에서 배제할 비박계 의원 40명 명단이 있다는 ‘공천 살생부’ 논란도 일었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친박계 위주의 공천 결과에 반발, 공천장 직인을 거부하며 부산으로 내려가는 ‘옥새 파동’을 일으켰다.


‘공천 저승사자’의 출현

민주당도 ‘공천 학살’의 역사에서 자유롭지 않다. 2008년 18대 총선 때 박재승 당시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호남 현역 30% 물갈이’를 목표로 칼자루를 휘둘렀다. 그 결과 현역 의원 24명이 탈락했고, 물갈이 대상 의원 11명은 공천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박 공심위원장은 ‘저승사자’ ‘공천 특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공천에 탈락한 설훈 의원은 박 공심위원장의 방을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벌였다. 공천에서 배제된 다른 의원들과 지지자들도 연일 항의 집회를 열어 당은 한동안 내홍에 휩싸였다.

2016년 20대 총선에선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친노무현 진영이 공천권을 놓고 충돌했다. 김 위원장은 ‘공천 개혁’을 내세우며 이해찬 정청래 정봉주 등 강성 친노 인사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올리자 친노·친문 진영은 ‘셀프 공천’이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격분한 김 위원장이 대표직을 사퇴하겠다며 귀가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발생한 비대위원장의 ‘파업 사태’에 친문·친노 진영 의원들은 서둘러 자세를 낮췄다. 이들은 김 위원장에게 사죄의 뜻을 표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 자택을 찾아가서야 갈등이 겨우 봉합될 수 있었다.

‘시스템 공천’이 자리 잡아야
뉴시스

전문가들은 공천권을 둘러싼 당내 갈등을 막기 위해선 ‘시스템 공천’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각 정당은 후보 선출에 유권자 다수의 뜻이 반영되는 방향으로 공천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며 “당내 권력자라도 공천을 좌우할 수 없도록 시스템의 민주성이 담보돼야 고질적인 계파 갈등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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