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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그 남자의 세계여행

박지훈 종교부 차장


그 남자는 프랑스 파리에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포토그래퍼였다. 프리랜서였기에 일이 뜸한 시기엔 몇 달씩 세계여행을 다니곤 했다. 2019년 늦가을에도 남자는 3개월 정도 동남아시아 곳곳을 둘러볼 요량으로 베트남으로 향했다. 한데 이듬해 2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사달이 났다. 남자는 갑자기 타이어가 터져버린 자동차처럼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돼버렸다. 고국으로 가기엔 그즈음 한국의 코로나 확산세가 너무 드셌고 파리로 가봤자 일거리가 끊겼을 게 불문가지였다. 결국 남자는 2020년 3월 하루 평균 확진자가 30명 수준이고 상대적으로 물가도 저렴한 태국으로 향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태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모아 놓은 돈을 헐어 쓰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일밖에 없었다. 하지만 2개월쯤 흐르자 은행 잔액이 거덜이 났다. 통장에 찍힌 잔액은 119원. 자, 남자는 이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유튜브 채널 ‘가든의 세계여행’에는 이렇듯 엄혹한 코로나의 터널을 통과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20년 5월 17일부터 이듬해 11월 6일까지 이 채널에 올라온 태국 편 에피소드는 총 68편. 남자는 생존을 위해 씀씀이를 극단적으로 줄인다. 마트에서 떨이로 파는 음식을 사 먹고 4000원짜리 소시지로 몇 날 며칠을 버틴다. 계란 한 판을 사다가 온갖 계란요리를 해 먹으며 연명한다. 부실한 식사 탓인지 얼굴에 두드러기가 나서 고생하기도 한다.

이전까지 남자에게 유튜브 채널은 자신의 추억을 쌓아놓는 곳간이었다. 하지만 이젠 삶의 뒷배가 돼줄 곳이 유튜브밖에 없었다. 다행히 과거에 올린 남미 여행 영상이 조금씩 인기를 얻고, 2020년 12월에 올린 영상 ‘280일째 태국에 살고 있는 30대 백수의 현실’ 조회 수가 급증하면서 그의 상황은 서서히 나아졌다. 남자가 2020년 7월 유튜브를 통해 처음 거둔 수입은 21만8112원. 이 돈은 절망으로 허물어지던 그의 삶에 희망의 기운을 감돌게 해줬다.

이런 내용이 ‘가든의 세계여행’엔 한가득 실려 있다. 남자가 태국에서 보냈던 시절을 기록한 영상들을 보면 그의 치열했던 삶을 느끼게 하는 내레이션이 곳곳에 등장한다.

“당장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을 버텼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견뎌내니 또 다른 겨울이 찾아왔다. 여전히 난 태국에 있고 세상은 여전히 거친 파도 속에 있다. …벌써 1년 하고도 한 달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이만큼 버티고 나니 이 운명의 끝이 궁금해졌다. 나는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2020년 12월 7일)

“방향성을 잃은 채 버려지는 듯한 이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쉬운 계절이 흘러가고 있다.”(2021년 1월 14일)

“처절했지만 살기 위해 버텼고 주어진 상황에 진심을 다했더니 어느새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나는 구독자 9만의 유튜버가 됐고 여전히 나는 태국에 있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잘 버텨서 여기까지 왔다.”(2021년 5월 29일)

언젠가부터 ‘가든의 세계여행’은 유튜브에서 제법 유명한 여행 채널이 됐다. 구독자는 현재 17만명이 넘는다. 사람들이 이 채널에 매료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었을 거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도 하늘길이 막힌 상황이 오래 지속했으니까.

하지만 여행에 대한 향수가 ‘가든의 세계여행’의 유일한 인기 배경은 아닐 성싶다. 남자의 ‘코시국 분투기’는 분명 코로나 시대를 맨몸으로 통과한 이들에게 뜨거운 공감과 뭉근한 위로를 선사했을 테니까. 이제 이 남자의 세계여행은 어떻게 될까. 남자는 지난해 11월 태국을 떠나 스페인으로 향했고 현재는 튀르키예(터키)에 머물고 있다.

박지훈 종교부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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