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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온유함의 은총

민수기 12장 3절


‘온유하다’는 말은 누구나 듣고 싶은 칭찬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온유한 사람이 많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온유하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는 온유하다. 그 온유함이 세상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라고 칭찬하십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데리고 왔을 때 미리암과 아론은 비방했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겸손함과 온유함을 특별히 인정하시기 위해 이렇게 하신 겁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겉으로는 구스 여인 때문에 지적한 것 같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주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다’는 불만에서 비롯됐습니다.

모세를 향한 비방을 들으신 하나님은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 맡고 있다. 그와는 내가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말한다”(민 12:7~8)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분명 모세와 다른 수준이었음에도 자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처음부터 온유한 사람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는 애굽 바로의 궁에서 사람을 쳐 죽였던 혈기 가득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남의 집 양을 치는 일을 합니다. 모세는 그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께 자신을 내려놓게 됩니다. 하나님이 쓰실만하신 온유한 사람이 됐고 하나님의 도구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게 됐습니다.

하지만 같은 공동체의 지체로부터 비방을 듣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 있을까요?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으면 부드러운 마음을 지키기 어려울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을 회막으로 부르시고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미리암에게는 한센병을 형벌로 내리셨습니다. 비방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방하는 건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모세와의 관계를 판단해 큰 책망을 받았던 걸 기억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을 내 마음대로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형제와 이웃의 허물을 덮고 용서하고 사랑의 길로 인도하도록 가르치십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사랑과 긍휼로 가득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반대로 내 마음이 더럽고 지저분하면 다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허물을 들추고 험담하는 게 일상이었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을 초대해서 대화하던 중 창문을 통해 옆집을 보며 “옆집 여자는 도대체 얼마나 더러운지 청소를 안 한다. 저것 좀 봐. 창문이며, 자동차며 온통 더럽고 얼룩투성이야”. 그 말을 듣던 한 친구가 말합니다. “그게 아니라. 이 집 창문이 더러워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라고 하더랍니다.

온유는 겸손과 직결됩니다. 온유는 단순히 부드러운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 그편에 붙어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은혜입니다. 주님과 가까이 있을 때 그 앞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사로잡고 인도하실 때 가능합니다. 온유함은 단지 힘이 없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중국의 고서 중 ‘황석공소서’라는 병서에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한다’는 뜻이지요.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온유는 본래 타고난 성품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 은혜를 얻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윤광서 목사(서울 영화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서울강남노회 소속인 영화교회는 서울 서초구에 있는 믿음의 공동체다. 1978년 창립 후 지역사회에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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