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갈라놓은 영호남, 교회가 치유한다

동서갈등 녹이는 한마음성시화대회

그래픽=이영은·게티이미지뱅크

“2007년 5월 29일 오전 10시. 가수 조영남의 ‘화개장터’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대구광주고속도로(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에서 연출됐어요. 영남과 호남지역에서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찬송을 부르며 모여든 기독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휴게소 안에 세워진 영호남 우정의 비 앞에 진을 쳤습니다. 모여든 인파만 2000여명이었지요.”

2007년 5월 29일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에서 열린 제1회 영호남 한마음성시화대회 장면. 한국성시화운동협의회 제공

15년전 영호남 화합을 위한 제1회 한마음성시화대회를 주관했던 한국성시화운동협의회 채영남(70·광주본향교회 목사) 이사장의 회고다. 지난 27일 광주 본향교회 목양실에서 만난 채 이사장은 “당시 정부와 국회가 손 놓고 바라만 보던 지역감정과 갈등을 방관하지 않고 신앙인들이 먼저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한마음성시화대회를 준비했다”면서 “아직도 선거철만 되면 꿀단지에서 꿀 빼먹듯이 슬그머니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모습들이 반복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얼굴을 붉혔다. 채 이사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 안팎에서 지역감정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구체적인 방법과 해결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분열과 갈등이 국가 발전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특정 집단의 이해와 이익 앞에서는 어김없이 지역갈등이 독버섯처럼 돋아나곤 한다는 것이다.

“영호남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제 탓입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영호남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길 기도합니다.” 17대 대선이 한창이던 때도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남과 북으로 나뉜 것도 애석한 일인데, 또다시 보이지 않는 선으로 동과 서를 나누며 대립해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크리스천 리더들이 앞장섰다. 동과 서로 연결된 유일한 고속도로에서 영호남 간 화해와 화합을 실은 관광버스들이 줄을 이었고, 지리산 휴게소에 동서 화합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영호남 한마음성시화대회 초창기부터 중심 역할을 감당해온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최홍준(77· 호산나교회 원로목사) 고문은 “자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으로 만나게 되니 ‘정치’와 ‘정서’를 포함해 ‘갈등의 이유’가 삶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면서 “한마음성시화대회가 영남과 호남이 돌아가며 상대를 초청해 개최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일이자 동서화해와 화합의 실마리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한마음성시화대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아주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2020년 코로나 방역수칙으로 개최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 영남과 호남에서 열린 한마음대회는 총 14회, 참여인원만 연평균 2000여명이 넘는다. 서로가 오가는 사이에 장벽은 점차 낮아졌고 상생과 협력, 미래를 위해 마음을 합하게 됐다. 지역의 현안에서 민족의 미래를 품는 공동체로 발전했다.

“한마음성시화대회는 동서화합의 실질적인 동력입니다. 관 주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구시와 광주시의 ‘달빛동맹’보다 2년이나 앞서서 민간주도로 화합의 장을 마련했어요. 그뿐만 아니라 서로의 이익을 위한 협력보다도 상호 존중과 배려를 통한 치유와 화해로 지역 화합을 이루었기 때문이죠.”

오는 9월 제15회 영호남 한마음성시화대회를 앞둔 채 이사장과 최 원로목사가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말이다. 대구에서 열리는 이번 한마음성시화대회는 행복한 대한민국의 더 큰 미래를 꿈꾸며 서로를 보듬는 장이 될 전망이다.

한국성시화운동협의회 이종승(71·창원 임마누엘교회 목사) 대표회장은 “기독인들의 한마음성시화대회는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전 영역에서 지역갈등 해소를 위한 방법론이 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한마음성시화대회의 출발이, 고 김준곤 목사가 설립한 성시화운동본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성시화운동은 ‘깨끗한 도시’ ‘정직한 사람’ ‘친절한 사람’을 목표로 한다. 특정 이익을 대변하거나 이루는 것보다도 함께 살아가는 세계, 모두가 행복의 가치를 누리는 공공의 기본권과 가치 실현이 최대 목표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공동체의 섬김과 헌신은 중요한 기본조건이 되었으며 본이 되고, 함께 실천하며 섬기는 운동을 40년째 펼치고 있다. 성시화운동의 정신은 국가의 병폐라 할 수 있는 ‘지역갈등’과 ‘지역감정’을 해소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영남과 호남지역의 성시화운동본부는 기존의 상식과 틀을 뛰어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했다. “아무 조건 없이 일단 만나 보자”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만나지 못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면 서로 이해할 수 없다. 배려하지 않으면 화합은 일어나지 않는다. 헌신과 섬김, 그리고 인내 없이는 화해할 수 없다. 15년 동안 한마음성시화대회를 통해 얻은 값진 교훈이다. 누구에게나 가치의 기준은 다르고, 추구하고자 하는 방식도 다르다. 다름을 존중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해와 목적을 위해 갈등과 대립을 선택하게 된다면 종국에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2016년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제10회 영호남 한마음성시화대회에서 채영남(왼쪽) 이사장이 예장고신측 경남노회(법통) 노회장 이인덕 목사와 화해의 포옹을 하고 있다. 한국성시화운동협의회 제공

대한민국은 초갈등사회다. 사회갈등지수가 높아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치러야 할 갈등 비용은 연 82조~246조(2010년 삼성경제연구소)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도와 법을 통한 강제적인 해결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주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면서 규제와 제재가 불러온 더 복잡한 ‘갈등’을 경험했다. 하나의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기 위해 제재하거나 강제할 경우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법이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을 조장하는 상황이 됐다.

기독교는 기적의 역사를 창조해왔다. 해묵은 지역갈등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되므로 극복할 수 있다. 남북갈등도 마찬가지다. 다소 무모하다 할지라도,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라 할지라도,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일어서서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변화의 역사가 이뤄진다.

15년 전 지리산 휴게소의 만남과 하나 됨을 다시 기억하자.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지만 역사는 실현됐고, 꿈은 이뤄졌다. 그리고 행복한 대한민국, 해피코리아의 시대를 열어갈 초석이 됐다. 화해는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가 피해자 앞에 무릎을 꿇으면 된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났을 때 일곱 번이나 무릎을 꿇었다. 야곱이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형도 얻고 고향도 얻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채 이사장은 “누군가는 남북통일보다 한국교회의 하나됨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면서 “그러나 영호남 한마음성시화대회처럼 서로가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상처 낸 것을 참회하고, 용서하고, 화해한다면 한국 교회는 하나될 것이고, 남북화해의 역사를 만드는 주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전협정일인 오는 27일 오후 2시 국회 헌정기념관 강당에서 ‘지역갈등, 한국교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

기독교는 촛불과 태극기를 넘어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는 말씀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6∼27)

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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