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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신도, 악마도 디테일에 있다

박선숙 전 국회의원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네이마르 등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팀은 남산타워, 이태원 등 여러 곳의 방문기를 SNS에 올렸다. 덕분에 전 세계 수억명의 팔로어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한국의 모습을 알리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거뒀다. 그중에는 화장실 사진도 들어 있다. 한 선수는 한국의 공중화장실은 호텔 수준이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우리 공중화장실의 변화는 사실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준비하면서 눈에 띄지 않지만 세심하게 공을 들인 부분이 화장실 대책이었다. 정부는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 양변기로 바꾸는 시설개선 비용을 지원했고, 민간에서는 화장실문화 개선 캠페인이 진행됐다.

광화문광장의 응원에도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 1998년부터 몇 년에 걸쳐 광화문을 차 없는 거리로 개방하는 등 광장 문화를 실험했지만, 막상 월드컵이 다가오자 경찰과 행정안전부는 응원 인파가 몰릴 경우 사건 사고가 우려된다며 야간 전면 개방에 이견을 제기했다. 그러나 수백만이 운집한 응원은 사고 없이 진행됐고, 끝난 뒤 쓰레기까지 청소하는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이미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러낸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88올림픽 땐 차량 2부제 실시나 행사 기간 중 대규모 토목공사 중단 등 정부 주도의 하향식 대책이 대부분이었지만 2002년 월드컵은 국민의 참여 속에 그 역동성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은 결혼반지, 아이 돌 반지까지 들고나와 길게 줄을 섰던 금모으기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중국의 장쩌민 주석 등 전 세계의 정상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금모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런 국민이 있다면 위기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금모으기운동의 제안자가 당선인 시절의 김대중(DJ)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려졌다. 당선 직후 시민단체 대표들을 만난 DJ는 국채보상운동처럼 국민이 금모으기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다만 자발적 참여가 중요하니 자신이 앞장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금모으기를 곧 대통령에 취임할 DJ가 공개적으로 제안했다면 그렇게 많은 국민의 참여도, 국제사회의 감동을 불러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1997년 겨울,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정부 당국은 ‘우리 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해서 괜찮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허언이었는지는 국가부도 사태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10년 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버텨내는 데는 새롭게 구축된 ‘펀더멘털’이 바탕이 됐다. 구조조정으로 부실을 정리했고, 주요 대기업에 결합재무제표 작성이 의무화됐다. 외환위기 당시 ‘재벌들의 저승사자’로 불린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결합재무제표 의무화를 두고 “작지만 중요한 그 원칙이 시장의 투명성을 가져왔다”고 증언한다. 자금을 유용하거나 계열기업을 임의로 지원했다가는 결합재무제표상 빈틈이 드러나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거창한 재벌개혁 구호보다 더 위력을 발휘한 것은 투명한 장부의 기록이었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에서 그 말이 파생된 이유는 디테일이 없는 곳에 악마가 자리 잡는다는 뜻일 터다. 뜻이 아무리 좋아도 일이 제대로 되려면 디테일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늘 강조했던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볼트와 너트까지 챙기는 꼼꼼함으로 유명하다. 강철과 유리를 사용한 새로운 양식의 건축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그런 세밀함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정치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건물을 짓는 건축과 다르지 않다. 볼트와 너트를 챙기지 않고 그럴듯한 건물을 지으려고 하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여야는 경쟁적으로 새로운 구호를 유권자 앞에 꺼내놓는다. 하지만 구호정치, 플래카드 정치가 횡행하면 설계도는 부실해지고 시행착오와 추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유권자인 국민이 지게 된다. 구호만 요란하고 디테일이 부족한 결과다. 볼트와 너트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정부, 빛나지 않지만 필요한 숙제는 반드시 해내는 정부가 필요하다. 더욱이 지금은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는 위기 상황 아닌가.

박선숙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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