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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귀환한 ‘햄릿’… “다른 색깔 보여줄 것”

손진책 연출, 원로들은 단역·조역
13일부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햄릿 역의 배우 강필석(왼쪽)과 클로디어스 역의 유인촌이 지난달 28일 서울 강북구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연습실의 연극 ‘햄릿’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올여름 연극계 최고 화제작은 오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신시컴퍼니의 ‘햄릿’(8월 13일까지)이다. 2016년 연출가 이해랑(1916∼89) 탄생 100주년을 맞아 권성덕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윤석화 손봉숙 등 내로라하는 원로 배우 9명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햄릿’의 귀환이다. 올해 공연에선 원로 배우들이 조역과 단역으로 물러나고, 길해연 강필석 박지연 박건형 김수현 등 젊은 배우들이 주역을 맡았다.

올해 ‘햄릿’의 타이틀롤을 맡은 강필석(44)과 지난 공연에서 햄릿을 맡았다가 이번에 숙부 클로디어스 왕으로 출연하는 유인촌(71)을 지난달 28일 서울 강북구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연습실에서 만났다.

‘햄릿’의 극적 갈등은 햄릿과 클로디어스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햄릿 입장에서 삼촌 클로디어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와 어머니까지 빼앗은 만큼 복수의 대상이다. 복수 때문에 미친 척하던 햄릿은 사랑하는 오필리아와 그녀의 가족을 죽게 만든다.

6년 전 6번째 햄릿 역할을 하며 “더이상 연극 ‘햄릿’은 안 한다”고 했던 유인촌은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다. 하지만 예전 멤버가 모두 무대에 오른다는 얘기에 마음을 바꿨다. 유인촌은 “이번엔 작은 배역을 맡고 싶었다. 무덤지기를 하고 싶었는데, (역할 경쟁에서) 선배들에게 밀리다가 맡은 게 클로디어스”라며 “‘햄릿’을 6번 했지만, 클로디어스 역은 처음이라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연극계에서 손꼽히는 고전이다. 햄릿 역은 남자 배우들에게 평생의 로망으로 통한다. 하지만 대사가 많기로 유명한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서도 주인공의 대사 분량이 가장 많아 배우를 힘들게 한다. 특히 이번 공연은 국내 연극계의 원로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강필석의 무게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강필석은 “햄릿 역을 제안받았을 때 바로 수락했다. 햄릿 역에 대한 로망도 있었지만, 원로 선생님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서였다”며 “6년 전 관객으로 선생님들의 ‘햄릿’ 공연을 봤는데, 선생님들의 연기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이번에 선생님들과 함께 ‘햄릿’에 출연하면서 선생님들의 시간을 흡수하는 기분”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솔직히 햄릿을 연기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다. 하지만 박정자 선생님은 육회를 사다 주시고, 윤석화 선생님은 삼계탕을 사주시고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저를 챙겨 주신다”며 기쁨을 드러냈다.

두 배우가 이날 시연한 연극의 한 장면. 햄릿이 기도하는 클로디어스를 죽이려다 더 나은 순간을 위해 참는 대목이다. 신시컴퍼니 제공

강필석의 이야기를 듣던 유인촌은 “햄릿이 망하면 다 망하는 거야. 다른 역할이 잘해도 쓸데없다. 필석이가 살아야 우리 모두와 작품이 산다”며 격려했다.

유인촌은 30살이던 1981년을 시작으로 65세이던 2016년까지 햄릿 역으로 6차례 무대에 섰다. 한국연극사에서 고 김동원(1916~2006) 선생과 함께 햄릿 역할을 가장 많이 했다. 유인촌이 생각하는 햄릿은 어떤 인물일까. 유인촌은 “햄릿은 매우 현대적인 인물이다.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여러 성향을 햄릿이란 인물에 쏟아부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로 대중에게 친숙한 강필석은 연극에도 종종 출연했는데, 그중 하나가 2012년 국립극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강필석은 “10년 전 로미오를 연기할 때는 젊은 혈기로 밀어붙였다. 그게 가능했던 건 로미오가 사랑을 위해 앞으로만 달려가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햄릿은 상황 자체가 복잡한 데다 성향도 복합적이라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현대극에 없는 독백이 유난히 많은데, 길게는 5분이나 되는 독백들을 드라마의 흐름 속에서 매끄럽게 이어가며 각각 변화를 주는 게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강필석은 연습 때마다 유인촌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유인촌은 말을 아꼈다. 그는 “역할은 배우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요즘 젊은 배우들은 선배들의 전형적인 연기와 다른 자연스러움이 있는 만큼 선배들의 틀에 굳이 맞출 필요가 없다”면서 “필석이가 그동안 역할을 잘 만들어 왔다. 다만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한마디 하자면, 이제 채우는 대신 버려야 한다. 매번 감정을 다 쓰려고 하지 말고 강약 조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필석도 “햄릿 안에 너무 많은 감정이 있다 보니 처음엔 여러 가지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것처럼 연기하다가 이제는 조금씩 덜어내고 있다”고 답했다.

강필석은 자연스러운 햄릿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손진책 연출가의 요구에 수염을 깎지 않고 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햄릿에겐 흐트러진 모습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유인촌은 클로디어스를 ‘남성미 넘치는 나쁜 남자’로 보여주기 위해 흰머리를 검게 염색할 예정이다. 이번에 처음 악역을 맡은 그는 “형을 죽이고 왕좌는 물론 그의 아내까지 빼앗은 클로디어스가 2막에서 신에게 기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고뇌하고 반성하는 대신 신에게 대드는 느낌으로 연기하려고 한다. 나쁜 짓을 한 사람도 내 얼굴을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진정한 악역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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