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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하면 지원금, ‘가업승계’ 잘못하면 세금 폭탄

확장 위해 업종 바꿔도 공제 안돼
“산업 구조 변화 맞춘 제도 필요”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여는 발언을 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문구·사무용품 유통업체 빅드림의 여상훈 실장은 요즘 사업이 잘되는데도 고민이 크다. 그는 7년 전 부친이 운영하는 회사에 합류한 뒤 과학 교구 제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오프라인 매장 고객이 감소하자 제품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10억원대이던 연 매출은 50억원대가 됐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그는 정부의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정부가 업종 변경을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여 실장은 3일 “(가업 상속 대신) 창업을 하면 지원금을 받으니 새로운 업종으로 회사를 세울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아버지가 세운 회사는 사라지게 돼 가업상속공제를 결정했다”면서 “그런데 ‘백년기업’을 위한 상속지원제도라더니 가업을 더 키웠는데 세금만 늘었다”고 말했다.

중견·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헛돌고 있다. 세제 지원은 확대됐지만 가업 승계를 가로막는 ‘업종 변경 제한’이라는 걸림돌은 그대로다. 업종 간 경계가 무너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가업상속공제는 연 매출 4000억원 미만 기업의 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을 상속인에게 정상적으로 승계하면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가액에서 공제해준다. 상속 후 정규직 근로자 수, 기업의 자산, 상속인의 지분 등을 유지해야 하는 사후관리 조건이 있다.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고려하면 괜찮은 지원책이지만 업종 유지 조건이 발목을 잡는다. 상속인은 상속 후 7년간 표준산업 중분류상 동일 업종을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분업에서 제빵업으로의 전환은 중분류상 모두 ‘식료품 제조업’이므로 가능하다. 하지만 모피제품 제조업에서 모피 및 가죽 제조업으로 업종 변경은 불가능하다. 모피 제조업 중분류는 ‘의복, 의복 액세서리 및 모피제품 제조업’, 모피 및 가죽 제조업은 ‘가죽, 가방 및 신발 제조업’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신사업 매출이 기존 사업 매출을 능가해 주력 사업 분야가 바뀌는 경우에도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때문에 가업 상속 지원을 받는 중소기업들은 사업 다각화가 힘들다. 사후 관리 요건 탓에 신사업 진출이 어렵고 이는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고 하소연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업종 및 사후관리 요건 완화 등 기업승계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지난달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는 업종 요건 완화 관련 내용이 빠졌다.

정부는 업종 변경 제한이 폐지되면 기술·노하우 등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하는 가업상속공제 도입 취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태도라는 목소리가 높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 구조의 변화에 맞춰 가업을 이어가기 위한 업종 전환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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