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땅을 거룩하게 하라는 소명


유대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솔로몬은 많은 궁궐과 성을 지었지만 아직 성전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성전을 지을 만한 땅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봤지만 찾지 못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성전을 짓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가 어딘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슬그머니 궁궐을 빠져나와 언덕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혹시 좋은 생각이 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느덧 그는 모리아산에 이르게 되었고 거기 있는 커다란 올리브 나무에 기대 눈을 감았다.

문득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더니 이쪽 밭에서 저쪽 밭으로 밀 짚단을 옮겨놓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도둑이구나 싶어 그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 하나가 나타나더니 저쪽 밭에서 이쪽 밭으로 밀 짚단을 옮기기 시작했다. 도둑이 다른 도둑의 것을 훔치는 격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 밭의 주인들을 소환한 솔로몬은 그들이 친형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왕은 먼저 동생을 불러내 어찌 된 일인가 물었다. “형님과 저는 아버지로부터 똑같은 재산을 상속받았는데 형님은 아내와 세 명의 자식도 있고 저는 혼자 몸입니다. 그러니 형님은 저보다 식량이 더 많이 필요한데도 저한테서는 단 한 톨도 가져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밤중에 밀 짚단을 옮겼던 것입니다.”

왕은 동생을 내보내고 형을 불렀다. 형의 말은 이랬다. “나는 가족들이 여럿 있기에 농사를 짓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동생은 혼자 몸이라 농사를 지으려면 많은 사람을 고용해야 하니 곡식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통 나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놀라운 우애였다. 왕은 두 형제를 함께 불러 그들을 껴안고는 말했다. “밭을 나에게 팔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이미 돈독한 형제애로 그 땅을 신성하게 했기 때문에 나는 거기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구나.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며, 그보다 더 건전한 초석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성전 혹은 교회의 기초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입지 조건, 투자 가치, 발전 가능성이 아니다. 땅을 신성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존재 이유다. 토라는 언약 백성들이 사는 곳이야말로 하나님이 머무는 땅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 땅은 무고한 이들의 피가 흐르지 말아야 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한숨이 스며들지도 말아야 한다.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네온 십자가가 도시의 밤을 밝히고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또 다른 의미의 애굽이다. 억울한 이들의 신음이 도처에서 들려온다. 경제 논리가 생명의 논리를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생산성을 높이고 인건비를 줄이는 일에 집중하는 순간 노동자들은 위험에 노출되게 마련이다. 자본의 욕망 뒤에서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웃고 있다.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들이 그런대로 질서를 유지하며 사는 것은 사회적 계약 덕분이다. 계약의 핵심은 이익이다. 내게 이익이 있다고 여길 때 우리는 계약 관계에 돌입한다. 이익이 없다고 여길 때 계약은 무효화된다. 계약의 토대 위에 세워지는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경쟁이다. 경쟁은 늘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승자는 이익을 독점하고 패자는 원망을 내면화하고 산다.

성경은 계약이 아닌 언약에 근거한 세상을 그려 보인다. 언약 공동체의 핵심은 이익이 아니라 관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가 아니라 ‘우리’다. 개별적 존재인 ‘나’를 ‘우리’로 묶어주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언약에 참여하는 이들은 공유된 비전에 의해 움직이고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교회가 사랑과 우애라는 기초 위에 설 때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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