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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생애와 광대한 다산학, 연보와 시문으로 재구성

[책과 길] 사암 정약용 전기
정해렴 지음, 창비, 676쪽, 4만원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지식인 정약용은 75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평생에 걸쳐 쓰여진 이 글들은 고스란히 자기 인생에 대한 증언이 된다. ‘사암 정약용 전기’는 선생이 직접 쓴 묘지명과 시문으로 그의 생애를 재구성한 책이다. 창비 제공

책 제목에 나오는 정약용 선생의 ‘사암’이라는 호는 낯설다. ‘다산’이라는 호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선생은 ‘열수’ ‘다산’ ‘사암’ ‘자하도인’ ‘태수’ ‘문암일인’ ‘탁옹’ ‘철마산초’ 등의 호를 사용했다. ‘기다릴 사’(俟)에 ‘초막 암’(庵)을 쓰는 사암은 그의 마지막 호다. 후세에 성인이 나와서 자신의 저서를 본다 해도 그르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지은 호라고 한다. ‘사암선생연보’를 집필한 정규영 등 선생의 후손들도 이 호를 즐겨 사용했다.

‘사암 정약용 전기’는 ‘사암선생연보’를 주축으로 정약용의 일대기를 기술한다. 1762년 6월 16일 경기도 남양주 8대 옥당 집안에서 태어난 날부터 1836년 2월 22일 75세로 여유당에서 영원히 잠들 때까지 연보를 따라가며 주요 행적을 해설한다.

이런 구성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정약용의 시와 산문, 저술들이 중간중간 계속 끼어들기 때문이다.

저자 정혜렴(83)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선생이 저술하거나 편찬한 책이 경학과 예약 분야는 247권이고, 시문학과 정경집·역사지리학·국방학·의학 등 기타 분야가 285권으로 모두 합하면 532권에 이른다.

저자는 50년 넘게 편집·교정 일을 해온 관록의 편집자이자 정약용의 후손으로서 선생의 주요 저술을 번역하고 편집하고 해설했다. 선생의 방대한 저술을 경학 분야를 빼놓고는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이런 공부가 바탕이 돼 정약용의 생애와 시문을 적절하고 유려하게 조립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재료로 사용된 또 하나의 중요한 기록은 선생이 회갑을 맞아 자신의 삶을 정리해서 쓴 ‘자찬묘지명’ 집중본이다. 집중본은 문집에 실릴 것을 예상해 자세하고 길게 쓴 자서전이다. 이 글은 ‘다산문학선집’에 ‘나의 삶, 나의 길’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저자는 ‘자찬묘지명’에 대해 “후세들이 다른 사람들이 나쁜 마음으로 터무니없이 비방한 기록을 믿고 자신을 평가하는 것을 막으려면 사실을 올바로 기록해두어야 하리라 여긴 사암 선생이 선견지명을 갖고 기록해놓은 참으로 굳게 믿을 만한 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사암 정약용 전기’는 후손이 정리한 연보와 정약용 본인이 쓴 자서전, 그가 평생에 걸쳐 쓴 시문들로 재구성한 일대기다.

이런 구성의 의미는 “선생의 생애와 사상과 공적을 선생 스스로 써놓으신 대로 기술하려고 한다”는 저자의 말에 잘 표현돼 있다.


이 책은 18년간의 유배 생활로 대표되는 선생의 극적인 생애와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이 표상하는 광대한 다산학을 흥미진진하게 꿰어낸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정약용을 만나는 출발점으로 손색이 없다.

정약용의 치열하고 수준 높은 시문들이 그것들이 쓰인 상황 속에 배치됨으로써 생생하게 읽힌다는 게 이 책의 두드러진 장점이다. 젊은 날에 쓴 ‘적성촌에서’ ‘굶주린 백성’ 같은 사회시들, 목숨을 걸고 쓴 듯한 서늘한 상소문들, 친구 가족 자녀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건조하게 기술되는 연보 속에서 드라마를 보여준다.

관료 시절 정약용의 모습을 깊게 비춘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정조 임금과 정약용의 관계, 정약용의 정치와 관직에 대한 태도, 당대 정치와 사회에 대한 고민, 정치적 고난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저자는 ‘사암다운 처세’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충청도 관찰사 이정운에게 보낸 편지를 든다.

정약용의 작은 공을 임금에게 알리려는 이정운에게 “한 구절이나 반 글자라도 더러 저에게 공을 돌리는 말씀을 하신다면, 저는 곧바로 상소하여 당신께서 사정을 좇아 임금을 속였다는 잘못을 초들어 극렬히 따져 탄핵할 것입니다”라고 매섭게 경고한다.

‘제자들과 두 아들에게 내려준 교훈’ ‘사암의 두 아들 교육법’ ‘사암의 문학론’ ‘사암의 저술’ 등 별도의 장으로 마련한 주제도 흥미롭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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