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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갇힌 수학 교육 제2 허준이는 없다

필즈상 수상으로 본 韓 교육 문제점
성취도 세계 3위, 흥미는 최하위
‘공부 기계’ 강요에 학생들 주눅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에서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허 교수는 초·중·고교 시절 수학에 별 관심 없던 학생으로 시인이 되기 위해 고교를 중퇴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

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 쾌거는 동시에 한국 교육 시스템의 현실에 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허 교수의 수학적 재능은 한국 초·중·고교 과정에서는 왜 제대로 부화하지 못했을까.

국내에서 초·중·고교를 다닌 ‘국내파’인 그는 미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학창시절) 수학만 빼고 과목 대부분을 꽤 잘했다”며 “수학은 평균적으로 보통이었다. 어떤 시험에선 그럭저럭 잘했지만 다른 시험에선 낙제할 뻔했다”고 말했다. 고교 자퇴와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한 뒤에도 수학은 그와 거리가 있었다. 국내 교육 과정을 이수한 첫 필즈상 수상자조차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 한국의 수학 교육이었던 셈이다.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국가교육과정 개정추진위원장)는 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우리 초·중등 공교육 시스템은 허 교수 같은 인재가 수학적 재능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진단했다. 그는 “창의적이거나 영재성 있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반복 학습을 견디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 수학 교육은 빠듯한 시간을 주고 기계적으로 문제 풀이를 강요한다”며 “(허 교수 같은 재능의) 학생들은 이런 기계적인 반복 학습에 주눅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려운 문제를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접근하며 느끼게 되는 ‘수학의 즐거움’이 삭제된 교육이란 얘기다.

허 교수 석사과정 지도교수인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도 “(한국의) 수학 시험은 하루에 기껏해야 한두 시간을 주고 빨리 푸는 방식”이라며 “빨리 푸는 실력만 측정하고 한 방향으로만 매진해서 달리는 교육밖에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수학 교육의 문제점은 ‘2019년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에서 잘 드러난다. TIMSS는 각국 학생들의 수학·과학 성취도를 비교하는 연구로 4년 주기로 시행된다. 58개국 초등 4학년 33만명, 39개국 중2 25만명을 대상으로 했다. 한국 초·중학생 수학 성취도는 3위였다. 1995년 조사 시작 이래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조사 대상국 중 수학을 가장 싫어하는 국가도 한국이었다.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응답비율은 61%로 압도적 1등이었다.

교육계도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흥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여 수학을 친숙하게 익히는 ‘스토리텔링 수학’이나 각종 도구를 활용해 쉽고 재미있게 수학 개념을 가르치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고교학점제형 교육과정이라고 불리는 ‘2022 개정 교육과정’도 이러한 시도의 일부다. ‘수학과 문화’라는 융합선택 과목을 신설해 교사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연구 주제를 설정하고 수학을 탐구하게 한다. 가령 다빈치의 예술품에 녹아 있는 수학을 연구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정점으로 하는 대입 제도 앞에서 번번이 무력했다. 교육부 교육과정 담당자는 “학생들이 수학을 즐겁게 공부하도록 하려는 노력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평가가 뒷받침되지 못했다.

우리 교육은 아직 5지 선다형 문제풀이식 교육에서 벗어나 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문제를 모르진 않는다. 다만 정부도 손대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먼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인 국가교육과정은 여러 학문 분야들의 ‘투쟁의 산물’이다. 정부가 국가교육과정 개편에 착수하면 각자 자신의 학분 분야를 조금이라도 더 넣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현행 교육과정(2015 개정 교육과정)이 만들어질 때에도 학계가 청와대와 국회를 통해 교육부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교육과정 개정이 1차전이라면 수능의 과목과 시험 범위 설정은 2차전이다. ‘전쟁’이란 표현은 교육부 출신 첫 ‘교육 수장’이었던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의 책 ‘대입제도, 신분제도인가 교육제도인가’에 등장한다. 그는 “수능 시험에서 자신의 영역이 빠지면 학생의 관심과 선택이 줄고, 수업 개설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교사와 교과목의 권위나 실질적인 권력 상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대입제도 개편은 교육과정의 제2차 대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고 했다.

국가교육과정과 수능을 둘러싼 어른들의 전쟁이 끝나면 학생들이 공부할 분량은 늘어난다. 학교는 이에 맞춰 진도를 나간다. 수학의 경우 위계가 있는 학문인데 학교는 낙오자를 돌볼 겨를이 없다. 예를 들어 인수분해를 모르면 이후 교육과정도 따라가기 어렵다. 다수의 ‘수포자’(수학 포기자)를 양산하는 구조인 것이다.

특히 수능의 시험 범위는 고교 교육과정 전반을 좌우한다. 수능은 정해진 시간에 얼마나 많은 문항을 풀어내느냐를 측정하는 시험이다. 일반 문항을 기계적으로 빨리 풀고 절약한 시간을 상위권 변별력을 위한 ‘킬러 문항’에 쏟을 수 있느냐로 학생을 평가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에 대비한 훈련을 반복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여론에 따라 널을 뛰는 대입 정시·수시 비율 논쟁은 교육 시스템을 더욱 왜곡시켰다. ‘정시가 공정하다’는 여론을 의식해 정치권은 그간 수능 위주의 정시 비율을 늘렸다. 변별력을 위한 문항은 수학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이리저리 비틀어 답을 찾기 어렵게 하는 데 치중했다. 박 교수는 “수능 킬러 문항들을 필즈상 수상자 등 전 세계 수학 석학들에게 보여준 일이 있는데 ‘수학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고 이리저리 꼬아 놓은 미친 문제들’이란 답변이 돌아왔다”며 “평가 방식을 바꾸지 않고는 우리 수학 교육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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