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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사고 없지만… 후쿠시마 반면교사 조심 또 조심

[리셋! 에너지 안보] <4> 원전 안전 현주소 진단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원전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안전’ 문제가 꼽힌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 이후 10년 넘게 흘렀지만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다만 이와 같은 여론이 정부가 원전 안전을 강화하도록 만드는 촉매가 된 것도 사실이다. 2011년 이후 한국에서 발생한 원전 고장 사례 중 국제기준에 따라 ‘사고’로 기록될 만한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

최소한 현시점에서 놓고 본다면 한국 원전은 안전하다고 평가해도 무방한 셈이다. 대신 무조건 안심해서는 안 된다. 국제기준에 따라 ‘고장’으로 판정된 국내 사례 대부분은 사람이 원인 제공자다. 인공지능(AI)이 원전을 운용하는 것이 아닌 이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한국 원전 안전 수준은

지난 18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인 2012년부터 지난달까지 10년6개월간 발생한 사고·고장 건수는 124건에 달한다. 연평균 12건씩 발생하는 셈이다. 다만 기록으로 남은 모든 사고·고장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낙인찍을 수는 없다. 이 기록 중 국제기준인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INES)상 사고로 분류되는 건은 없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만든 INES는 사고·고장 정도를 7등급으로 분류한다. 이 중 낮은 수준인 1~3등급은 기기에서 발생하는 ‘고장’일 경우다. ‘사고’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이보다 높은 4~7등급을 의미한다. 가장 높은 단계인 7등급(대형사고)은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보고된 124건의 사고·고장 건수 중 INES에 부합하는 사례는 모두 19건이다. 이 중 17건이 단순 고장일 경우 판정하는 1등급이며 2건이 2등급(고장) 판정을 받았다. 모두 고장으로 분류된다. 2012년 고리1호기 계획예방정비 중 전원이 꺼지고 비상용 디젤발전기조차 작동하지 않았을 때가 2등급이었다. 2019년 한빛1호기에서 발생한 부주의한 제어봉 조작 사례 역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통해 2등급으로 결론났다.

IAEA는 방사능 유출 우려가 없는 1등급과 달리 2등급 이상부터 방사능 오염도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당시 2등급을 받은 두 사례 모두 방사능 유출로 인한 오염은 없었다.

INES상 0(등급 이하 경미한 고장)에 해당하지만 국내 기준에 따라 경보를 발령한 적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단 한 건의 기록이 남아 있다. 2018년 10월 태풍 콩레이가 강한 바람을 동반하고 한반도를 덮쳤을 때 한울 1~4호기에 국내 기준상 3단계 비상발령기준 중 하위 단계인 ‘백색경보’가 발령됐다. 10분간 풍속이 기준점인 초당 33m를 넘었다는 경보 시스템 오작동이 원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상황이었지만 이 역시 경보 설정 오류를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후쿠시마 전엔 냉각수도 샜다

현재까지 선방하고 있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원안위에 따르면 핵연료봉을 식히는 역할을 맡는 냉각수가 원전 내에 누수된 사례가 2건이나 있었다. 1984년 11월 월성1호기에서 23.5t이 원자로 건물 내에 누수됐고 2010년 10월에는 신고리1호기에서 432t이 누수됐었다.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개선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와 연관이 있다. 2011년 3월 이후 국내에서는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원전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건설 수주로 기세를 탔던 정부조차 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정부는 1만년 빈도의 극한 자연재해 수준의 평가를 담은 스트레스테스트 도입 등 46개 후속 조치를 단행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자체 발굴한 10건의 후속 조치를 더하면 모두 56개 조치가 기존 대비 추가됐다. 이 중 54건이 완료된 상태다.

뭐가 달라졌을까. 대표적으로 지진과 해일에 대한 방어력이 높아졌다. 일례로 내진 설계 기준을 원전 설계 당시 기준(규모 6.5)보다 0.5 더 높인 규모 7.0까지 견딜 수 있도록 보완했다. 규모 6.5 이상 지진이 발생하면 원전이 자동 정지하는 설비도 국내 원전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해일 역시 해안방벽을 높여 대응 중이다.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고리원전의 경우 해안 방벽 높이를 기존 7.5m에서 10.0m로 증축했다. 극한 상황 시 전력 공급을 위해 필요한 이동형 발전차나 펌프 등을 통합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일본에는 도입되지 않았던 시스템이다.

다만 최근 10년여간 발생한 INES 2등급 고장 모두 사람이 원인이었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고리1호기 보조용 디젤발전기 점검을 소홀히 한 것도, 한빛1호기에서 제어봉을 조작했던 것도 사람이었다. 조그만 부주의가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50년간 원전을 운영하며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만하지 않고 해외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안전성을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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