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방인지, 적인지’… 美·서방 최대 ‘골칫거리’ 에르도안

테헤란서 러·이란과 3자 정상회담
스웨덴·핀란드 나토 가입 비토
NYT “국내 입지 다지기 위한 것”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에서 23일(현지시간) 소방관들이 러시아의 미사일 폭격으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전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유엔, 튀르키예(터키)는 흑해 안전 항로 마련, 수출입 선박 안전 보장에 합의했지만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협상안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연합뉴스

튀르키예(터키)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자처하는 국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편을 다 들고 있어서다.

전쟁 초기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북부 침공을 물리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우크라이나에 대량 수출한 자국산 바이락타르 공격용 드론이 러시아 탱크·장갑차·견인포 등을 수없이 파괴했기 때문이다. 반면 흑해의 출입구 보스포러스 해협을 러시아 군함과 상선에 열어줘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함락시키고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장악도록 방치한 것도 튀르키예였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사진) 튀르키예 대통령의 행태가 미국과 서방의 최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튀르키예 언론들은 전날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유엔 등과 협상해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길을 열었다고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최대 곡물 수출항인 오데사에 대규모 폭격을 가했다. 4자 합의가 얼마나 엉성한 것이었는지 보여준 셈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줄곧 나토 입장에 부합하지 않거나 모호한 태도만 보여왔다. 그는 수없이 친러시아 행보를 걸었다. 튀르키예는 아직도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동참할 의사가 전혀 없다.

앞서 지난 19일에는 이란 테헤란까지 가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야툴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정상회담까지 가졌다. 이슬람 수니파인 튀르키예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을 ‘영원한 적’으로 간주해왔지만 에르도안은 이에 개의치 않는 외교 행각을 펼친 것이다.

그는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나토에 합류하려는 스웨덴과 핀란드에 대해서도 어깃장을 놓고 있다. 두 국가가 자국 내 분리독립 세력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옹호한다며 가입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나토는 기존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새 회원국을 받을 수 있다.

나토는 모스크바와 300여㎞밖에 떨어지지 않은 핀란드, 20세기 내내 중립국이던 스웨덴을 끌어들여 군사적 결속을 다지려 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훼방꾼을 자처하자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미국은 이 같은 그의 행동에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는 모양새다. 서방 전체의 적인 러시아·이란과 튀르키예가 ‘한 묶음’으로 엮이는 상황 자체가 참을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NYT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외교 행보는 오로지 자신의 국내정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속셈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 “집권 이래 지속해온 민족주의 포퓰리즘을 이번에도 극대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잘못된 경제정책에 따른 엄청난 인플레와 통화 폭락 사태로 통치 기반이 흔들리자, 국민의 관심을 외부 세계로 돌리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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