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소 폭탄에 이혼”… 가정 무너뜨리는 ‘파업 후유증’

농성 참여 88명 조합원 대상 청구
지난한 소송에 이혼 등 가족 해체
가압류·회유 노노갈등 불거지기도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지난 3월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공동합의문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초 최종호(48) 전국택배노조 부산지부 CJ연제수영지회장이 일을 끝내고 귀가하자 모친이 사색이 된 얼굴로 두꺼운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CJ대한통운 측이 청구한 20억원 손해배상 소장이었다. 택배노조는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28일부터 65일간 파업을 벌였다. 소송은 파업 기간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본사를 20일간 점거한 데 따른 것이다.

택배노조는 파업을 통해 CJ대한통운대리점연합과 인수시간 하루 3시간 이내 제한, 주 5일 배송 시범사업 시행 등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점거 농성에 참여한 88명은 이후 손배소 후폭풍에 직면해 있다. 20억원을 88명으로 나눌 경우 1인당 청구액은 2300만원 가량이다. 최 지회장은 3일 “나는 ‘올 게 왔다’는 심정으로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넘어갔지만,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일부 조합원에겐 회사로부터 소장이 왔다는 것 자체가 가정을 무너뜨리는 큰 충격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이혼 절차에 들어간 조합원도 있다”고 전했다.

조합원들은 특히 소장에 명시된 ‘피고 조합원들과 원고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구에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최 지회장은 “CJ 로고 유니폼을 직접 사 입고 회사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해 왔는데, 회사가 우리를 부정한다는 느낌까지 들었다”고 토로했다.

다른 사업장에서도 회사의 파업 손배소 후유증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지현민(47) 현대차 아산하청지회 사무장은 “파업 동안 임금을 못 받았는데 해고까지 당하면서 집에 ‘빨간 딱지’가 붙을 정도로 경제적 타격이 컸다”며 “지난한 소송 과정에서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들과도 생이별해야 했다”고 말했다.

원청의 손배소가 노조 활동을 옥죄는 ‘무기’가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현식(53) 기아차 화성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가압류라도 들어오게 되면 결국 노조를 탈퇴하는 등 원청 측에 서게 되는 이들도 생기게 된다”고 했다. 이상규(45)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은 “회사 측이 자회사와의 계약 등 조건을 내걸고 ‘소를 취하해주겠다’는 식으로 소송을 협상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조합법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발생한 재산적 손해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그러나 원청 회사와 직접 계약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종료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파업에서도 선박 점거 농성 등을 벌인 하청 노동자에게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가 예고된 상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3일 국회에서 이와 관련된 질의를 받자 “손배소는 당사자 간 문제”라면서도 “책임질 행동을 하면 책임지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답했다. 반면 야당을 중심으로 노조의 단체행동에 가해지는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하자는 취지의 ‘노란봉투법’ 제정 촉구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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