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희천 (6) “하나님이 날 살려주시는구나”… 성경 덕분에 목숨 건져

체포될 바엔 산에 들어가 지낼 결심하고
집 나서다 빠뜨린 성경 가지러 온 동안
순찰 중이던 순경들과 마주칠 고비 넘겨

국군이 1950년 10월 평양 수복 직전 대동강을 건너는 모습. 박희천 목사는 국군이 평양을 수복할 때까지 석 달가량 산에 숨어 지냈다.

군사증을 받지 않고 있다 체포될 바엔 집을 떠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가서 금식하며 성경을 읽으면 최소 40일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수님도 40일 금식을 하지 않았는가. 1950년 8월 6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쌀과 콩 한 말을 자루에 넣어 등에 졌다. 성경과 영어 교과서는 습기가 배지 않도록 기름종이로 말아 보자기에 따로 쌌다.

쌀을 지고 대문까지 나갔을 때 뭔가 허전했다. 성경을 넣은 보따리를 놓고 온 것이다. 그 보따리를 가지러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야단쳤다. “한시가 급한데 왜 다시 왔느냐.” 얼른 책 보따리를 챙겼다. 대문에서 집안으로 들어가 성경책을 들고나오는 데 대략 12초가 걸렸을 것이다. 막 대문을 나서려는데 심장이 멎을 뻔했다.

순경 두 명이 총에다 총검을 꽂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벽 쪽으로 몸을 숨겼다. 만약 내가 성경을 가지러 다시 집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길에서 순경들을 만났을 것이다. 순경들은 나를 바로 체포했을 테고 나는 전쟁터에 끌려갔을 것이다. 그야말로 성경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하나님이 날 살려주시는구나!’ 용기가 났다. 순경들이 지나간 뒤 바로 나가서 산으로 피했다.

하차리교회 근처에 숨을 곳을 정했다. 심심산골 하늘 아래 첫 동네라 숨어 있기 좋은 곳이었다. 산으로 숨어들 때 하차리교회 집사님에게 내 행방을 알렸다. 감사하게도 집사님은 그날부터 밥을 날라주었다. 그렇게 국군이 북진해 평양에 들어온 10월 하순까지 산에서 지내며 성경을 읽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반겨주었다.

11월 말쯤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국군과 미군이 중공군에게 밀려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시 공산당이 내려오면 전도사인 나는 무사할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고초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조카들까지 모두 합쳐 가족 25명이 피난을 가기로 했다. 처음 우리 목적지는 남한이 아니었다. 평양 조금 아래에 가 있으면 금방 전세가 또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설마 국군이 평양을 내주겠나. 평양은 사수할 거야.” 12월 2일 피난길에 올랐다. 한 사람이 보퉁이 몇 개씩을 짊어진 데다 젖먹이부터 겨우 걸음마를 뗀 조카들까지 있었다. 남쪽으로 가는 길은 더디기만 했다. 500m쯤 걷다가 쉬고 또 걷고 쉬기를 반복했다. 하루에 고작 30리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중공군이 쏘는 대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쾅쾅! 쾅쾅!” 점점 그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러다 군대와 맞닥뜨리면 스물넷인 나는 바로 전장으로 가야 했다. 전도사라는 게 들통나면 바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12월 5일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먼저 가야겠습니다. 조심해서 내려오세요.”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만 해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정리=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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