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탕감 논란 ‘새출발기금’ 삐걱… 지자체 “손실 떠안겨” 반발

지역신보, 부실채권 헐값 매입 우려
“지방에 부담 전가” 국비 보전 요구
원금 감면 도덕적 해이 문제도 여전

서울 시내 폐업한 편의점에 불이 꺼져 있다. 연합뉴스

소상공인·청년 등 취약층 대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정부가 조성하는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 정부가 정책 손실을 자신들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며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새출발기금은 사정이 어려운 차주의 부실 채권을 사들여 만기를 20년까지 늦추고 대출 금리를 낮춰줄 계획이다. 90일 이상 빚을 갚지 못한 장기 연체 차주에게는 90%까지 원금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이 계획이 걱정스럽다.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등이 대출을 받을 때 지자체 산하 지역 신용보증재단(신보)이 보증을 섰는데, 새출발기금이 이들의 부실 채권을 헐값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손실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다. 서울신보는 채권 매입가율 12% 가정 시 연 손실액이 4000억원에 이른다는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놨다. 캠코가 100만원짜리 채권을 12만원에 사간다는 의미다. 이는 정부가 새출발기금 운용 기관인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에 출자하기로 한 금액 3조6000억원을 채권 매입 예정액(30조원)으로 나눈 수치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따르면 2017~2021년 캠코의 시장 부실 채권 매입가율은 연 3.5~39.5% 수준이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시도협)는 성명서를 준비하는 등 공동 대응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시도협은 성명서에 “새출발기금 사업은 지방 재정에 직접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는데도 지자체 입장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중앙 정부 재정 부담을 지방 정부에 전가하는 것” 등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과 범위를 축소하고 지자체 재정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국비로 보전해달라는 요구다.

정부는 “새출발기금이 부실 채권을 사올 때는 시장가를 지급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지자체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캠코 자체 자금으로 재원을 보태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 “3조6000억원으로 30조원어치 부실 채권을 사들이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시장가를 주겠다’는 정부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모럴 해저드’ 논란을 불러온 원금 탕감도 여전히 뜨거운 쟁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아무나 원금 탕감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실제로 원금 탕감 조건인 90일 연체 시 신용 불량자(금융 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된다. 빚을 모두 갚더라도 금융 전산에 연체 기록이 남고 신용 점수가 급락해 향후 수년간 금융 거래가 까다로워진다. 정부는 재산·소득 규모를 초과하는 채무에 대해서만 원금을 탕감해줄 계획이다.

남은 과제는 부실 차주 원금을 얼마까지 깎아주느냐다. 정부는 이달 중 한도 등 세부 사항을 확정해 공개할 것으로 보이는데 너무 작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한도가 너무 크면 도덕적 해이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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