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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늘도 매달린다” 위험에 내몰린 에어컨 기사들

여름철 수리·점검, 비수기의 3배
인력 부족·고객 항의에 위험 감수
최근 5년간 8명 작업 중에 추락사

한 에어컨 수리 기사가 로프에 몸을 지지한 채 아파트 베란다 외부에 있는 실외기 위에서 작업하고 있다. 실제 작업 현장에선 로프 등 안전장치를 갖출 수 없어 맨몸으로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에어컨 수리 기사 김모(37)씨는 최근 고장 신고를 받고 서울 관악구 4층 가정집을 방문했다. 점검 대상인 실외기는 베란다 밖에 있었다. 작업을 위해선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실외기를 봐야 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다. 난간과 실외기 받침대 고정장치가 자신의 무게를 견딜 수 없을 듯했다.

이런 경우엔 통상 사다리차로 외부에서 작업한다. 다만 사다리차 가능 일정을 조율해 다시 날짜를 잡는다. 사다리차가 없으면 다른 기사와 2인 1조로 작업을 하는데 일정을 맞출 시간도, 안전 장비를 챙길 여유도 없었다. 김씨가 “당장 수리가 어렵다”고 하자 고장 신고를 한 여성은 아기 등을 보여주며 “신생아인데 에어컨이 고장나 온몸에 땀띠가 났다”며 “어떻게든 고쳐 달라”고 사정했다.

결국 고장 신고를 한 여성의 남편이 난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고, 김씨가 그 위에 올라서서 작업을 시작했다. 김씨는 7일 “로프도 없이 작업하려니 작업 내내 머리가 쭈뼛 섰다”며 “접수가 몰리다 보니 눈 딱 감고 맨몸으로 외벽을 탈 때가 많다. 여름이 무섭다”고 토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조에 따르면 여름철 에어컨 수리·점검 요청은 비수기보다 3배 정도로 늘지만 인력은 그대로다. 최봉기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경남지회장은 “하루 5곳 방문하기도 빠듯하지만, 여름철에는 평균 7곳의 수리를 완료해야 해 실제 방문은 그보다 많다”며 “매일 시간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방문 시간을 맞추다 보니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송모(42)씨는 지난주에도 5층 실외기 난간에서 맨몸으로 용접을 했다. 안전 장비를 미리 챙기지 못한 탓이다. 현장마다 작업 환경이 달라 필요 장비를 다 챙길 수 없고, 현장 확인 후 다시 장비를 챙기러 갈 시간도 부족하다. 로프를 걸고, 작업 후 다시 수거하면 시간이 2배 이상 걸려 다음 예약 시간을 맞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그는 맨몸으로 난간에 설 수밖에 없었다.

빠듯한 스케줄에 더해 지친 고객들이 쏟아낸 항의에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수리 기사 40대 이모씨는 2주 전쯤 6층 옥상에서 5층으로 로프를 타고 내려갔다. 사다리차 일정에 맞춰 재예약을 잡으려 하자 고객이 항의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로프 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아슬아슬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긴장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에어컨 설치·수리 작업 중 8명이 추락사했다. 지난 4월 서울 송파구 한 상가 5층 외벽에서 실외기를 점검하던 30대 기사가 추락해 숨지면서 서울에서 두 번째 중대재해처벌법 송치 사건이 되기도 했다(국민일보 8월 2일자 10면 참조). 금속노조 관계자는 “에어컨 수리 성수기 때는 일시적으로 근로시간을 유연화하고 인력 충원을 해야 한다”며 “실적 기준으로 임금을 계산하면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호봉제를 도입하는 등 임금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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