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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대우조선, 이 시대의 공정

이영미 영상센터장


요즘 조선소에서 발판공은 무조건 하청 소속이다. 원청 정규직은 수십m 고공에서 발판 만드는 일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추락 사고가 잦은 위험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도장, 전기 업무도 80~90%를 하청이 처리한다. 어렵고 힘들고 위험해서다. 대신 원청은 생산 지원이나 시운전 같은 걸 한다. 짐작건대 한여름 달궈진 철판을 용접하는 것보다는 안전한 작업이다. 위험한 일은 하청이 한다. 조선소의 첫 번째 규칙이다.

지난달 끝난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을 지켜보며 많은 걸 알게 됐다. 위험의 외주화가 최근 일은 아니지만 극단의 사례가 조선업에 만연하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지난 7년간 대우조선 사망사고 11건 중 10건은 하청에서 일어났다. 신기하게도 재해 사고는 원청이 20% 많다. 여기서 K조선소에서만 통용되는 두 번째 규칙이 나온다. 하청 노동자는 위험한 일을 해도 다치지 않는다. 죽을 뿐이다.

살아 있다면 가난해졌다. 파업 중 공개된 하청 노동자 월급 명세서를 보면 조선소에서 20~30년 잔뼈가 굵은 숙련공이 비현실적일 만큼 오래 일하고 놀랍도록 적게 받았다. 건조 중인 선박 밑바닥에서 31일간 ‘0.15평 농성’을 벌였던 하청지회 유최안씨. 22년차 용접공인 그가 지난 1월 228시간 일해 받은 월급은 207만원(세후)이었다. 또 다른 하청 노동자인 23년차 도색공은 291시간 일해 234만원을 받았다. 295만원을 벌었을 땐 무려 374시간 일했다. 주 6일 하루 14시간꼴이다. 워킹푸어라는 말로는 이런 부조리를 다 담을 수가 없다. 누군가 이렇게 장시간 위험하게 일하고도 빈곤하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나.

이게 바닥도 아니다. 금리는 뛰는데 대출이 막혔다. 정부 탓이다. 정부는 조선 불황기에 하청업체에 4대 보험 납부 유예를 해줬는데 지난달까지 유예 처분을 받은 10곳 중 7곳이 폐업해버렸다. 200만원으로는 생활이 안 되는데 보험료가 밀렸다고 이젠 대출도 안 된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다. 정부는 조선업 불황기에 기간산업을 보호하고 하청업체를 지원하려 했을 뿐이다. 노동자 상황에는 그냥 무관심했다.

불황인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회사가 잘돼야 임금이 오르지 않겠나. 한덕수 총리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가 벼랑에 몰린 게 진짜 조선업 불황 때문인가. 조선업이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지난 20여년 동안 대우조선은 정치적 스캔들의 종합세트였다. 절정은 2012~2014년 5조원대 분식회계. 사장과 최고재무책임자가 매출과 영업이익을 부풀려 수조원대 사기대출을 받았고, 이걸 성과로 수천억원대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정치권에는 뇌물성 투자와 후원금이 뿌려졌다. 감시는 없었다. 사외이사 30명 중 절반이 정치권 낙하산으로 채워지는 동안 다들 주인 없는 회사를 빨아먹느라 바빴다.

그때 분식회계가 남긴 혼란은 아직도 수습 중이다. 저가 수주한 배는 만들수록 빚을 늘리는 애물단지가 됐고, 회사는 분식회계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몇백억원씩 연패하는 중이다. 누군가는 경영 실패와 분탕질이 남긴 손해를 메워야 한다. 대우조선의 실패는 오롯이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됐다. 익숙한 전개다. 지난 몇 년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하청노동자 임금은 30% 깎여나갔고, 이번 파업으로도 회복되지 못했다. 회사가 어려운데 당연한가. 그렇다면 등기이사 평균 연봉이 2017년 1억8300만원에서 2019년 5억3600만원으로 2배 넘게 뛴 것도 당연한가(이탄희 의원실).

약자가 시스템의 실패를 떠안는 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다. 가장 불공정한 위기 극복 방식이 수십 년째 한 치의 변화도 없이 반복된다. 고통은 아래로, 과실은 위로만 분배되는 사회. 과연 이 시대의 공정인가.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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