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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사주와 MBTI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사주는 태어난 연월일시로 운명이 결정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그 근간은 오행사상이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중국 전국시대에 형성된 원시적 세계관이다. 세상 모든 존재를 목화토금수 다섯 가지로 나눠 보는 일종의 오분법이다. 방위는 동서남북중, 색깔은 청황적백흑, 도덕은 인의예지신, 계절은 춘하추동과 환절기로 나눈다. 시간도 다섯 가지로 나누는데 이것이 사주를 구성한다.

오행의 오분법적 세계관은 세상 만물을 음과 양 두 가지로 나누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비하면 진일보했다고 하겠으나 그 한계는 자명하다. 개체의 개성과 세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다섯 가지로 범주화하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보다 많으면 줄이고, 모자라면 늘려서 끼워 맞추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비슷한 시기 서구에서 유행한 ‘원소설’과 비슷하다. 원소설 역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흙, 물, 공기, 불 따위로 환원하는 원시적 세계관이다. 주기율표에 118개의 원소가 기재된 지금으로서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원소설은 폐기된 지 오래인데 오행에 기반한 사주를 여태껏 신봉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주는 본디 민간에서 유행하던 점술이다. 사주로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가 51만8400가지나 된다며 애써 복잡한 척하지만 그 본질은 오분법에 불과하다. 과학적 근거도 물론 없다. 태어난 시간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사주는 미신에 불과하다. 하기야 한날한시에 태어났는데 어떤 아이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덕택에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어떤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죄로 미군이 철수하던 날 철조망에 걸려 죽지 않았던가. “사주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의 운명은 노력과 환경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라고 하면 사주는 더욱 믿을 것이 못 된다. 무엇이 타고난 운명의 영향이고 무엇이 노력과 환경의 영향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요새는 미래를 점치는 사주보다 현재의 나를 파악하는 MBTI(성격유형검사)가 유행이다. 특히 청년층에서 인기가 높아 초면에 MBTI부터 물어볼 정도라고 한다. 80년 전에 만들어진 진부한 검사법이라는 사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과몰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MBTI의 16가지 유형이 다양한 성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고 사람의 성격을 256가지로 분류하는 검사법이 나온다면 MBTI처럼 유행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분류는 너무 단순해도 문제고 너무 복잡해도 문제다. 16가지면 적당하다.

종전에 유행한 혈액형별 성격 분류는 사분법이다. 다양한 인간의 성격을 유형화하기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응답자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MBTI에 비하면 논리적 근거도 부족하다. 사분법은 모든 사람을 성인 남성과 성인 여성, 미성년 남성과 미성년 여성으로 분류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고작해야 목욕탕에서나 쓸 수 있는 분류법이다. MBTI의 선풍적 인기는 그 다양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6분법의 MBTI에 수월하게 적응하는 청년세대에게 사분법적 혈액형별 성격 분류나 오분법적 사주팔자 따위는 유치할 뿐이다. MBTI 유행은 우리 사회의 다원화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 점에서 진보 아니면 보수,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 갇힌 우리의 정치 현실은 암담하기 그지없다. 16분법에 익숙한 청년세대에게 단순무식한 이분법적 진영 논리는 환멸을 일으킬 뿐이다. 정치 성향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16분법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개인의 정치 성향을 오행처럼 다섯 가지 정도로만 분류해도 지금 같은 극단적 진영 대립은 완화되지 않을까 싶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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