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한마당] 폭우와 반지하

한승주 논설위원


고지대에 위치한 저택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기택(송강호)과 기우(최우식) 기정(박소담). 한밤중 폭우 속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온다. 그들이 마침내 도착한 곳은 물에 잠긴 반지하 주택. 이미 허리까지 물이 찬 집에는 살림살이가 둥둥 떠다니고, 이들은 역류하는 변기 위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다. 부자는 높은 곳에, 빈자는 낮은 곳이라는 빈부격차의 상징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창문 너머 지상에는 취객이 방뇨하고 오토바이 매연과 벌레가 들어오는 반지하. 거의 한국에만 있다는 반지하는 1960년대 후반 남북 긴장이 고조되며 생겼다. 국가 비상사태 시 지하를 벙커로 사용하기 위해 모든 신축 저층 아파트에 지하 공간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지하를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며 80년대 주택난 속에 지하 거주가 합법화됐다. 전국 36만여 가구가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는데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에 몰려있다. 반지하는 평소 햇빛이 잘 들지 않고 환기에도 취약하다. 가장 힘든 건 폭우다.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집이 물에 잠겨 지옥의 한철을 견뎌야 한다.

100년 만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8일 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발달 장애 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순식간에 떨어진 물폭탄은 지하로 흘러들었다. 불과 10여분 만에 집은 물바다가 됐다. 집에는 다운증후군을 앓던 40대 여성과 그 여동생, 여동생의 10대 딸이 있었다. 안에 갇혔는데 물이 밀려들어 문이 안 열린다는 연락을 받은 이웃들이 방범창을 뜯어내고 이들을 구하려고 사투를 벌였지만 소용없었다. 경찰과 소방관이 도착해 배수 작업을 마쳤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간 후였다.

자연재해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뜨린다. 이번에도 반지하가 시작이었다. 비는 또 내릴 것이다. 반지하·장애인 가구에 특별한 피난 대책이 필요하다.

한승주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