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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갇혀 있다” 급히 갔지만 이미 허벅지까지 물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층 일가족, 역대급 폭우에 참변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진은 침수된 빌라. 연합뉴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민 김인숙(66)씨는 지난 8일 밤 같은 빌라 반지하층에 사는 A씨의 전화를 받았다. 병원 진료 때문에 이날 집을 비운 A씨가 ‘집에 물이 찬다’는 딸 전화를 받고 이웃인 김씨를 찾은 것이었다. A씨는 전화에서 “우리 애들 좀 살려 달라. 비가 많이 와서 갇혀 있다”고 다급하게 요청했다.

놀란 김씨는 이날 오후 9시쯤 119에 신고하고 사위를 보내 A씨 가족의 안위를 확인했다. 하지만 지하에서는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었고, 물은 순식간에 허벅지 높이까지 차올라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침수 신고가 폭증하면서 소방대원들은 오후 9시40분이 넘어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주민들은 당시 반지하층에 순식간에 성인 머리 높이까지 물이 들어찼다고 회상했다. A씨 옆집에 사는 전예성(52)씨는 “밤늦게 출근하다가 집에 물이 찬다는 아이들 연락을 받고 돌아와 보니 이미 물이 허벅지까지 차서 출입문은 열리지 않는 상황이었다”며 “다른 주민들과 힘을 합쳐 창살을 뜯어내고 창문으로 간신히 아이들을 구해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어 A씨 가족을 구조하기 위해 창살을 뜯어내고 창문을 부숴 보려고 애썼지만 실패했다. 결국 A씨의 첫째 딸(47)과 둘째 딸(46), 초등학생 손녀는 다음 날 0시26분쯤 사망한 채 발견됐다. 소방서 배수 작업이 시작된 지 1시간30여분 만이었다. 이중 첫째 딸은 발달장애인으로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다른 지역 반지하 주택 주민들도 밤새 두려움에 떨었다. 관악구 신사동의 반지하층에 사는 20대 남성 이모씨는 8일 오후 8시쯤 반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 5㎝ 높이의 턱까지 빗물이 차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씨는 1층에 사는 아버지와 함께 분해해 둔 차수판(물막이판)을 다시 꺼내 설치했다. 이씨 아버지는 “11년 전 폭우로 신사동 일대가 물에 잠겼을 때도 여기서 물을 퍼날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수판 하나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30분쯤 지나 이씨와 이씨 부모가 모두 나서서 양동이를 들고 물을 퍼냈지만 밤새 쏟아진 비를 막아내기는 불가능했다. 이씨 방은 이날 밤 허리 높이까지 물에 잠겼다.

인근 연립주택 반지하에 사는 김모(83)씨도 폭우가 쏟아지자 주민센터에서 얻어 온 모래 포대자루 2개를 쌓아 계단 입구를 막았다. 하지만 이 역시 쏟아지는 ‘물폭탄’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김씨는 “양동이로 퍼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큰일”이라며 우려했다.

서울 다른 지역에서도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 동작구에서는 발달장애여성 B씨(52)가 침수된 반지하 주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함께 사는 고령의 B씨 모친이 먼저 빠져나왔고, B씨가 뒤따라 나오다가 갇히면서 참변을 당했다. B씨 여동생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이 B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B씨는 관할구청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등록돼있었다. 인근에서 가로수 정리 작업을 하던 60대 노동자 1명도 감전 사고로 숨을 거뒀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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