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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 맨홀 구멍 지키던 시민, 배달 라이더였다

교통통제 나서고 시민 대피시켜

119 특수구조대원들이 11일 서울 강남구 서울지하철 강남역 인근에서 맨홀에 빠진 실종자를 찾는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일 밤 맨홀에 빠져 실종된 남매 중 한 명은 이날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서울에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 8일 밤 9시쯤 서울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과 신대방삼거리역 사이 구간도 침수되기 시작했다. 해당 시간대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관측소에는 시간당 141.5㎜의 물 폭탄이 쏟아지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인 남성 허벅지까지 물이 찬 상황에서 시내버스 충돌사고까지 벌어지면서 일대는 쑥대밭이나 마찬가지였다.

거센 물살 사이에서 헬멧을 쓰고 우비를 입은 남성 A씨가 사람들을 향해 “돌아가세요”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주변이 혼잡한데도 가까이 오지 말라며 행인들을 저지하는 그에게 한 시민이 항의하러 다가간 후에야 그가 지키고 있던 곳이 맨홀 구멍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맨홀 뚜껑이 열리면서 구멍이 뻥 뚫려 있었지만 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서 폭우를 피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안모(39)씨는 10일 “동네 지리에 익숙한 배달 라이더가 재난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안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상황을 지켜본 복수의 목격자들에 따르면 앞서 맨홀 근처를 지나던 한 시민이 발을 헛디뎌 빠질 뻔하자 A씨가 부근을 떠나지 않고 시민들에게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번 폭우로 압력에 못 이겨 뚜껑이 날아간 서울 시내 맨홀 구멍은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했다. A씨가 지키고 있던 곳처럼 빠른 물살과 흙탕물로 인해 맨홀이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실제 서초구에선 이번 폭우로 2명이 맨홀 구멍에 빠져 실종된 후 한 명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폭우 이후 배달 일이 줄줄이 취소된 라이더들은 도로에서 시민 안전을 위한 교통 통제에 나서기도 했다. A씨가 맨홀 구멍을 지키던 시각 서울 구로구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에서도 배달 기사 B씨가 “위험해요, 위험해요”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침수된 승용차가 물에 떠밀리다 오토바이와 접촉사고가 나자 길을 지나던 그가 시민들을 대피시킨 것이다.

수해 복구를 위한 온정도 서울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침수 피해가 집중된 강남구의 경우 10일 수해복구 자원봉사단이 꾸려졌다. 강남구자원봉사센터는 전날 오후부터 수해복구 봉사자를 모집했는데, 하루도 안 돼 40명이 넘게 모였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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