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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재난 이후

천주희 문화연구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등에 내린 폭우로 이재민이 속출했다. 갑작스러운 재해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고, 대피한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실에서는 집중호우로 희생된 분들이 거주하던 서울 관악구의 반지하 앞에서 찍은 사진을 홍보 포스터로 활용했고, 서울 마포구청장은 직원들과 식사하는 사진을 올리며 “꿀맛입니다”라는 글을 남겨 몰매를 맞았다.

같은 시각 나는 서울 도림천을 지나고 있었다. 탑승한 차량 바퀴는 이미 물에 잠겼고, 도로 옆에 묶어둔 공사 자재가 떠다니는 상황이었다. 몇 시간을 두려움에 떨었고, 겨우 집에 돌아온 후에도 침수 지역민들의 걱정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몇 년 전 나 또한 수해를 본 이재민이었고, 그때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반지하 방 한 칸. 온갖 오물이 뒤덮고 갔다. 살림살이는 한순간에 쓰레기가 됐다. 긴급구호 물품으로 생활했고, 월세, 공과금, 학자금 대출금이 연체됐다. 주민센터에서는 보조금 100만원을 줬다. 그마저도 절반은 벽지와 장판 비용으로 집주인이 가져갔다. 몇 주 만에 돌아간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이후에도 비 오는 날이면 불안했다. 재난이란, 이런 것이다. 일상생활이 중단되는 경험을 넘어 사람의 몸과 마음에 공포와 불안을 남긴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내에서도 폭우, 폭염, 산불, 지진,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제 재난은 예외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와 지자체는 재난에 대한 대처 능력도 그에 대한 감각도 없는 듯하다. ‘조속한 조치’ ‘일상 회복’을 말하지만 일상 회복은 새로운 가구를 구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삶터와 마음에 남은 재난의 흔적이 조금씩 괜찮아질 때 시작된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사회적 애도와 명복, 이재민들이 무사히 귀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행동이 그토록 어려운가.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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