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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태권도 도장이 보육도 하는 나라

김현길 사회부 차장


평일 쉬는 날,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보면 노란색 학원 차량이 수시로 오가는 것을 본다. 차량에 적힌 학원 명칭은 달라도 크게 둘로 수렴된다. 영어 학원 아니면 태권도 도장. 학교 정문에서 태워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영어 학원과 태권도 도장은 초등학생 ‘학원 뺑뺑이’의 핵심 동선이다. 이 중 태권도 도장의 존재는 각별하다. 맞벌이 부부에겐 더 그렇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교육과 함께 보육에 방점이 찍혀 있다. 태권도 도장은 여전히 돌봄의 범주에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맞춤 서비스로 진화를 거듭했다. 태권도를 중심으로 다른 학원을 다닌다. 늦게까지 맡길 수도 있다. 본업인 ‘태권도가 덤’이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종합육아센터로 자리 잡은 지 꽤 됐다. 지난해 초 태권도 도장 영업을 풀어준 근거로 ‘돌봄 공백’을 언급했을 정도로 정부 공인(?)도 받았다.

만 5세 입학 추진에 대한 거센 반발은 보육을 태권도 도장과 함께해야 하는 현실에서 나왔다. ‘워킹맘’ 경력 단절의 최대 고비라는 초등학교 입학 시점이 달라질 수 있음을 박순애 전 부총리가 입에 올린 순간 반발은 불 보듯 뻔했다. 처음엔 3개월씩 4년 걸리는 일이 1개월씩 12년 걸릴 수 있다고 하더니 다시 없는 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자녀와 본인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결정이 매일 달라지는 것을 지켜본 부모들 마음은 크게 요동쳤다.

학제 개편안 추진 당사자가 물러나고, 폐기 수순에 들어갔지만 우려는 쉬이 가시지 않는다. “모든 논란의 책임은 저에게 있으며 제 불찰”이라는 박 전 부총리의 말을 믿어도, 개편안이 등장하고 수용된 토대는 현 정권이다. 대통령실은 정책 보고를 받은 당일 윤석열 대통령이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브리핑했다. 마무리도 개운치 못했다.

박 전 부총리는 부인했지만 느닷없는 개편안이 등장한 주된 이유에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 정권에서 이 문제를 거듭 검토한 이유가 그랬고, 현 정권 출범 후 윤 대통령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가 산업 인재 공급”이라고 했다. 그 전월엔 반도체 인력 문제로 “규제 타령한다”며 교육부를 질책해 하루 만에 정책을 수정하게 했다. 일련의 과정은 새 정부의 교육이 다른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정부는 돌봄에 대한 학부모 불안이 이번 논란을 촉발시켰다고 생각했는지 방과후 교실을 확대한 ‘초등 전일제학교’ 추진 계획을 박 전 부총리 사퇴 다음 날 국회에 보고했다. 돌봄교실 운영 시간 확대 방안도 담았다. 공교육이 돌봄 공백을 메우려는 이러한 노력은 합당하다. 돌봄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없도록 정책을 발굴하려는 시도도 계속돼야 한다.

그래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아이를 학교에 최장 10시간 넘게 붙잡아두는 정책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아이들 취학 시기를 앞당기고, 학교에서 오래 돌보도록 하는 건 사실 아이 입장보다 어른 관점에 가깝다. 공교육이 돌봄 공백을 메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도 정책적 관심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면 저출산 해법 역시 거기에서 찾는 게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복잡한 해법을 찾아야 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걸린다는 게 현실적 딜레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한 현 정부는 그렇게 돌아가는 길보다 즉각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방법을 선호하는 것 같다.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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