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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폐지” 34년의 외침

7대종단사형제 폐지 운동 안팎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목련실. 한국사형폐지범종교연합회 대표회장 문장식 목사를 비롯해 가톨릭, 불교 등 7대 종단 지도자들이 줄지어 섰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들의 얼굴엔 결연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사형제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엄숙한 음성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25년이 지나도록 더는 우리나라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며 “국제 사회는 대한민국을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중단된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한 지 오래”라고 밝혔다. 이들은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으니 죽어 마땅하다며 참혹한 형벌로 똑같이 생명을 빼앗는 방식을 국가가 선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신 국가는 범죄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모순점을 해결해 범죄 발생 자체를 줄여나가는 예방정책을 펴고, 범죄 피해자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넓혀 나가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등 주요 종단 지도자들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국민일보DB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사형제 폐지 및 사형집행 영구중단 흐름을 전했다. 유엔이 전 세계 사형 폐지를 목표로 선언한 지 오래됐고, 사형제도 폐지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입에 필수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범죄에서 사형을 폐지한 108개국과 군형법을 제외한 일반 범죄에서 사형을 폐지한 8개국, 한국처럼 실질적으로 사형을 폐지한 28개국까지 유엔 회원국(193개국) 중 사형을 폐지한 국가가 144개국(75%)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형 관련 법과 제도는 제자리걸음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21대 국회까지 9차례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헌재는 지난달 14일 사형제의 위헌 여부 판단을 위해 공개 변론을 열었다. 국가에 개인의 생명권을 박탈할 권한이 있는지, 사형제에 범죄 억제 효과가 있는지, 1996년 첫 심판 때부터 결론 내리지 못한 쟁점이 다시 헌재 대심 판정을 달궜다.

위헌 소송을 낸 청구인은 부모 살해 혐의로 사형이 구형됐다가 무기징역이 확정된 A씨. A씨는 생명권을 박탈하는 사형제도는 헌법에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사형제도가 범죄를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없고, 집행되면 되돌리기 힘들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최창수 홍보국장은 “사형을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거나 오판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며 관련 사례를 들었다.

197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선포 후 국민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북한발 위기를 조작했다. 민청학련과 인민혁명당 사건이 대표적이다. 북한 사주를 받아 국가전복을 노렸다는 이유로 사형까지 집행한 인혁당 사건은 조작된 것이었고 2013년 재심을 통해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1980년대 초 공안 당국이 조작한 일명 ‘김제 가족 고정 간첩단’ 사건으로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거나 옥살이를 하다 숨진 이들에게 34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반면 법무부는 헌법이 사형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했다. 또 사형제도는 생명에 대한 인간 본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범죄예방 효과가 있으며, 흉악범 등 엄격한 요건에 따라 사형이 선고·집행돼 우려가 적다고 주장했다.

우리 헌법에서 유일하게 사형을 언급한 110조 4항을 놓고도 부딪혔다. ‘비상계엄 군사재판은 군인 범죄 등에 한해 단심, 즉 1심으로 끝낼 수 있지만 사형의 경우는 그러지 아니한다’는 조항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우리 헌법이 사형을 금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A씨는 권력이 국민적 합의도, 진지한 고민도 없이 만든 조항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헌재는 1996년과 2010년 사형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형제가 위헌으로 결정되기 위해서는 재판관 6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범종교연합사형폐지아시아연대 회원들이 최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사형제도 폐지 집회를 하고 행진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제공

종교계는 사형폐지를 위해 힘써왔다. 1988년 서울구치소 종교위원 문장식 목사와 불교계 관계자가 사형폐지운동 단체를 조직하기로 합의하면서 활동은 본격화됐다. 이듬해 가톨릭이 참여하고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를 창립하면서 사형폐지운동은 전 종교계로 확산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는 1990년 총회에서 사형폐지연구추진특별위원회를 조직하고 1992년 사형폐지를 위한 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1993년 기독교전국교정교역자협의회가 사형제도 폐지 탄원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회도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형제도 폐지를 청원하면서 교계 차원의 운동은 다양화됐다. 이후 교단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를 창립하면서 사형폐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종교계가 사형제 폐지에 앞장섰던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이다.

종교계는 교종(矯宗)제도 법제화도 촉구하고 있다. 새희망교회센터(이사장 김성기 목사)는 최근 법무부장관에게 교도소 담임목사(전 형목) 제도를 부활시켜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회신 내용은 좋은 내용이니 적극 검토하겠다는 것뿐이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때 불교적 전임 교종제가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때는 기독교적 전임 교종제도가 있었으나 제2공화국 이후 폐지돼 비전임 교종인 종교위원이 수용자에 대한 종교 교화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무보수의 파트직인 비전임 교종의 비전문성, 비체계성, 단편성, 종교적 상품화와 자본화 등의 여러 문제점과 이로 인한 종교 교화의 한계 등이 지적되고 있다.

국민의 법 감정은 온도 차이가 있다. 한국갤럽이 헌재 변론 후인 지난달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설문한 결과 69%가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폐지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23%에 그쳤다. 다만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문 조사한 결과 ‘사형제 폐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20.3%였지만 ‘대체형벌 도입을 전제로 폐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6.9%로 높게 나타났다.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사무실에 도착한 전국 사형수들의 편지.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제공

사형폐지론자들은 대안 형벌로 ‘가석방 없는 종신제’를 제안한다. 현재 법원에서 선고하는 무기징역형의 경우 복역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문장식 목사는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님 사랑은 용서와 화해로 실현되는 고귀한 생명길이다. 이 생명길은 비록 험한 고난의 길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주께 영광 돌리는 주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게 하는 길이다.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사형폐지가 조속히 법제화되길 기도드리고 있다”고 했다.

새희망교회센터 이사장 김성기 목사는 “지난날의 교도소는 응보 위주였지만 오늘날 교도소는 교화 중심이어야 한다. 형벌의 목적이 응보 차원을 넘어 교화라고 볼 때 사형제도는 합리적 설득력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형을 가석방 없는 절대적 무기형, 상대적 종신형, 유기징역 상한제 폐지, 사형집행 유예제도 등으로 대체하면서 생명권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선진 인권을 감히 권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정선교연합회 사무총장 김요한 목사는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돌을 던져 죄인을 죽이는 것과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죄인이 죄인을 정죄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랑과 용서와 화해를 통한 정죄가 필요하다. 사형폐지는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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