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공무원이 내 개인정보 몰래 팔았다는데… 나는 왜 모르지?

실제 극단적 범죄 악용 ‘충격’


공무원이 내 집 주소와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누군가에게 몰래 팔아넘겼다는 사실이 수사를 통해 확인된다면 그 기막힌 유출 사실을 내가 바로 알 수 있을까? 결론은 ‘아니요’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해석에 따르면 내게 유출 사실을 알려줄 책임이 있는 비리 공무원의 소속 기관은 나의 개인정보를 알 길이 없다. 이 정보를 알고 있는 수사기관이 개인정보 관리 책임 기관에 알려줄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모른 채 또 다른 범죄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정보 관리·감독을 맡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 개인정보위는 우선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위한 수사자료 협조 절차가 개인정보보호법상 가능하다는 법리 해석 근거를 빠르면 오는 31일 개인정보위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만들겠다고 19일 밝혔다.

모호한 법적 근거… ‘골든타임’ 놓쳐

전 연인 가족 보복살인 피의자 이석준.

실제로 공무원의 공공 개인정보 유출이 살인이라는 최악의 범죄로 이어진 초유의 사태가 있었다. 수원시 공무원이 자신에게 부여된 차적 정보조회 권한을 이용해 흥신소에 판 개인정보가 살인사건의 빌미가 된 일이 지난 1월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전 연인의 가족을 보복 살해한 이석준은 지난해 12월 흥신소를 통해 이 공무원이 유출한 집 주소 정보를 50만원에 구매해 범행을 저질렀다.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 공무원이 2020년부터 흥신소에 건당 2만원에 팔아넘긴 개인정보가 1100건이 더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반년이 넘도록 피해자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수사기관에서 관계 법령이 없다는 이유로 유출 통지에 책임이 있는 수원시에 수사자료 공유하기를 주저했기 때문이다. 2020년 8월 출범한 개인정보위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예상하지 못한 초유의 상황에 대해 법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에게 개인정보 유출을 알리는 것은 2차 피해 구제와 예방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지만 ‘골든 타임’을 놓친 셈이다.

이런 사실이 보도되고 나서야 검찰은 뒤늦게 수원시에 수사자료를 공유했고, 지난달 21일 피해자들이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반년이 지나서야 입장을 바꾼 검찰은 수사 정보를 제공한 법적 근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개인정보 제공 법리 해석이 쟁점


개인정보위와 검찰 그리고 수원시 모두 급한 불은 껐지만 이 사건은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모두에게 ‘숙제’를 안겼다. 같은 문제가 반복될 때, 개인정보 유출 통지의 ‘골든 타임’을 지키기 위해선 명확한 개인정보보호법상 근거가 필요하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개인정보위가 해법을 찾아야 하는 법 해석상의 쟁점은 개인정보보호법 중 개인정보의 제공에 관한 조항(제17, 18조)이다. 개인정보 제3자 제공을 엄격하게 제한한 현행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개인정보 유출 통지의 책임 단체에 필요한 수사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선 두 조항이 규정한 범위 내에서 적용을 받아야 한다. 제17조는 개인정보를 수집한 목적 범위에 포함될 때, 제18조는 개인정보를 수집한 목적 범위를 벗어날 때 제3자 제공 기준을 규정해 놓았다.

개인정보위는 수사기관이 수사 과정에서 수집한 개인정보를 피해자 유출 통지를 위해 제공하는 것이 제17조에 따른 개인정보를 수집한 목적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고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개인정보 유출 통지는 정보 주체의 피해 예방을 위한 것”이라며 “넓게 해석한다면 (유출 통지의 목적인) 피해자 보호가 수사와 동떨어진 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보고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위한 협조 절차가 개인정보보호법 제17조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면 수사 자료 제공의 법적 근거가 생기는 셈이다. 이 해석이 적용될 수 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제34조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위해 목적 범위 내에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된다.

법리 해석은 근본적 해결책 안돼

다만 개인정보위가 제시한 법리 해석 해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개인정보보호법 제17조에 따른 ‘목적 범위 내’라는 해석을 너무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이 경우 수사기관이 수사자료를 제공할 법적 근거 대상에 민간단체도 포함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령 개정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개인정보위가 의결을 거쳐 해석을 넓혀 놓는다고 하더라도 실제 수사기관들이 이에 동의해서 수사자료를 제공하는 선례를 만들지는 미지수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도 “경찰과 검찰 각각 협의를 따로 해야 하는 상황이라 수사기관과의 협의도 더딘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