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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뽕은 어린이 해방군 아냐… 어른 관점 문제 해결일 뿐”

[인터뷰 사이] 편해문 놀이운동가

놀이운동가이자 놀이터 디자이너인 편해문씨가 모험 놀이터에서 자주 입는 복장 그대로 서울 여의도공원의 어린 왕자 조형물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샛노란 옷을 입은 건 지금 상황이 한국 사회의 어린이들에게 경고등이 들어온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빨간불 직전의 노란 불로, 빨간색 옷은 입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김지훈 기자

신드롬에 가까운 화제를 낳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 탈북민 노인 영세업자 같은 사회적 약자의 삶을 주로 다뤘다. 그중에서도 학원에 내몰린 아이들을 해방하겠다는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이 등장한 회차는 자체 최고시청률 15.8%를 기록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이름으로 개명까지 한 방구뽕이 자신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학원 버스를 훔쳐 학원 아이들과 산에서 신나게 놀고 난 뒤 납치 혐의로 법정에 서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는 방구뽕의 어린이 해방 선언에 많은 시청자가 공감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놀이와 놀이터 담론을 주도해온 놀이운동가 편해문(53)씨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어린이의 현실을 차분하고 꼼꼼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한 좋은 텍스트이지만 적어도 방구뽕은 어린이 해방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강연 동영상에 ‘어린이 해방군 대장님! 방구뽕~ 실존인물이네요’라는 댓글이 붙었다.

“방구뽕을 보면서 저를 떠올린 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저도 가족과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여서 그런 말을 들으면 기쁘고 즐거워야 할 텐데, 되레 불편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어떤 점이 불편했나.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하고, 드라마 한 편에 놀이에 대한 모든 것을 담기 어렵겠지만 드라마에 표현된 방구뽕은 어린이 해방군이 아니라고 본다. 어린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린이 해방군이 나타나 학원에서 탈출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이다. 어린이들이 소영웅으로부터 구원받는 식으로 그려진 것도 씁쓸하다. 어린이를 가두는 것도 어른이고, 어린이를 해방하는 것도 어른이라는 묘사는 한계가 분명하다.”

-성인들의 관점에서 성인 주도로 어린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지적인가.

“어른들이 뒤로 물러나야 아이들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자꾸 어른들이 앞에 나오려 한다. 방구뽕이 아이들에게 따라 하라고 하지 않나.”

-어린이 해방 선언을 복창하는 것 말인가.

“그것도 주입식이다. 방구뽕이 ‘얘들아, 놀자’고 하는데, 어른이 권유하고 이끌어가는 건 놀이가 아닐 가능성이 많다. 아이들끼리 ‘얘들아, 놀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리의 일이지 ‘얘들아, 놀자’면서 나서는 어른은 엄격하게 말하면 놀이 훼방꾼이자 놀이 방해꾼이다. 아이들끼리 놔두면 어떻게 놀고 뭐가 되겠냐는 불신이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배우지 않아도 잘 논다. 그렇게 노는 게 싱거워 보여도 진지한 놀이라고 봐줄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아이들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는다. 놀이가 아이들 안에 있기 때문에 놀아주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디자인한 놀이터들도 마찬가지다. 놀이기구 중심의 놀이터가 아니라 놀이 중심의 놀이터를 표방한다. 전남 순천 ‘기적의 놀이터’ 1호는 잔뜩 펼쳐진 모래밭에 언덕만 우뚝 있는데도 하루 300~400명씩 찾아와 평균 3시간을 놀다 가고, 1년에 아이들 10만여명이 이용하는 명소가 됐다.

-방구뽕이라는 캐릭터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아동인권과 놀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해방 선언문에 모든 게 담긴 것 아닌가.

“‘어린이는 당장 놀아야 한다’는 건 제가 지난 10년간 강의 때마다 하던 말이다. 세 가지 선언 모두 고대부터 지혜로운 사람들이 해왔던 굉장히 중요한 말이다. 이건 지금보다 더 널리 알려지고 더 많이 써야 할 문구라고 생각한다. 다만 방구뽕이라는 캐릭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영웅주의에 빠진 행동으로 어린이의 놀이 환경이 개선될 거라고 믿는다면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부모의 동의 없이 아이들을 산으로 데려가고 학원 버스 운전사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우는 행동은 그렇다.

“아이들에 대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방구뽕의 행동은 어린이 가까이에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덧붙여서, 방구뽕이 학원 버스에서 아이들에게 ‘여기서 선택을 해라. 내릴 사람은 내리고 탈 사람은 타라’고 묻는다. O 아니면 X로 선택이 강요되는 상황인데 어른들은 선택할 수 있는 보기 두 가지를 줬다고 생각한다. 그 두 가지 중에 아이들이 원하는 게 없으면 어떡하나. 한국 사회와 성인들이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방구뽕이 극복하고 넘어서려고 하는 어른들의 생각이 방구뽕에게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정인이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가 아동인권에 민감해졌다고 하지만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드라마가 논쟁할 만한 주제를 만들어줘서 고맙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 중에 가장 어려운 점은 도무지 선택을 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놀이의 관점에서 봐도 성인 주도의 놀이 활동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어른이 주제를 정하고 프로그램을 짜서 진행하는 곳들이 넘쳐난다. 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아이들이 ‘우리 언제 놀아요’라고 물어보는 일이 벌어진다.”

편해문씨가 총괄 기획한 전남 순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자연 지형을 살리고 놀이기구는 없앴다. 현재 8호 놀이터가 공사 중이다. 편해문 제공

-놀이 학습, 체험 교육, 키즈카페처럼 돈 들이지 않고 놀 수 있어야 놀이라고 했다.

“하자고 하는 걸 하는 게 놀이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놀이다. 물론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겠나. 그런데 냉철하게 봐야 할 것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어른들이 결정하는 경우가 압도적이란 점이다. 그러면서 창의적이고 참신한 생각을 하는 어린이로 커야 된다고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기와 다름없다.”

-어릴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하지 마’였는데 청년이 되면 갑자기 ‘도전해라, 도전 정신을 가져라’고 한다는 말씀이 와닿았다.

“방구뽕을 보고 난 후 대부분의 반응이 눈물이 났다거나 가슴이 답답했다는 것이다. 공부를 무진장 시킨다는 ‘무진학원’이나 문을 잠근다는 ‘자물쇠반’, 고카페인 음료 상용,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 있는 ‘텐투텐’, 체벌을 해도 좋다는 부모들의 서약서, 전혀 모르는 사실이 아니지 않았나. 변화가 일어나려면 눈물짓는 개인적 카타르시스를 넘어서 아이들의 놀이와 건강과 행복에 대한 사상, 철학,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동감은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에 답답함이 생기고, 그럼 상황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럼 지금 어떤 행동이 필요한가.

“허용이다. 아이들에게 허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조금씩 늘려가고 아이들이 결정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허용을 하지 않으니 양육자와 아이들이 서로를 계속 비끄러매고 어긋나게 된다. 해방은 아이들한테도 어른들에게도 필요하다. 해방은 해방군이 와야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허용해줄 때 온다고 생각한다.”

-이상주의자라거나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 가까이에서 일을 하려면 오히려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돼야 한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저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실험과 도전, 탐험을 하면서 아이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지 잘 안다. 자유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유능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이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한나절 지내면 회복이 된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런 구체적인 즐거움과 변화를 보고 있다. 우리는 망상가가 아니고 해방군도 아니고, 현실 속에서 아이들과 땀 흘리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다.”

편해문씨와 아내가 대형 밴에 놀잇감을 싣고 올가을부터 어린이들을 찾아갈 ‘플레이 앰뷸런스’ 앞에 섰다. 편해문 제공

-다음 프로젝트로 대형 밴에 놀잇감을 싣고 어린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구상을 한다고 들었다.

“‘플레이 앰뷸런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제는 놀이터를 만들어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릴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시골에는 어린이들이 접할 만한 문화가 너무 부족하다. 공공 놀이터만 놀이터인 게 아니라 아이들이 노는 곳이 놀이터다. 플레이 앰뷸런스 문을 여는 그곳이 놀이터라는 생각으로 올가을부터 가동하려 준비하고 있다.”

■ 편해문씨는 누구

어린이의 놀 권리를 강조한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썼고, 2015년 전남 순천에 문을 연 ‘기적의 놀이터’를 총괄 기획했다. 이 놀이터가 획일적인 놀이터 설계를 깬 공공 놀이터 혁신의 모범사례로 꼽히며 서울시교육청, 서울 서대문구, 강원도 춘천시, 세종시, 경기도 시흥시 등과 손잡고 공공 놀이터와 학교 놀이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디자인하고 리모델링했다. 2015년부터 경북 안동 집 앞마당과 밭을 ‘모험 놀이터’로 개방해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게 하고 있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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