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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웃는 고래’ 상괭이의 비극

송세영 문화체육부장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극적인 장면마다 고래가 등장한다. 도심 빌딩 사이를 유영하는 고래 이미지와 우영우가 전하는 여러 고래 이야기는 볼거리나 양념 이상의 역할을 한다. 우영우가 고래 사냥꾼의 작살에 맞은 새끼를 떠나지 못하는 어미 고래 이야기를 하며 “고래들은 지능이 높아. 새끼를 버리지 않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래도 끝까지 버리지 않아. 만약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안 버렸을까”라고 묻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시청자 중에는 “고래가 이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많다. 실제 고래를 보러 울산이나 제주도를 찾아가는 사람이 늘고, 불법 포획돼 돌고래쇼에 이용되다 바다로 돌려보낸 제주도 남방큰돌고래에 쏠린 관심도 커졌다.

한반도를 둘러싼 3면의 바다엔 오래전부터 고래가 뛰놀았다. 선사시대부터 고래를 사냥한 흔적이 울산 반구대 암각화 등에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독점하던 포경산업은 해방 이후 울산을 중심으로 명맥이 이어지다 1985년 중단됐다. 86년부터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상업 포경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후에도 연구 목적이라며 남극 바다까지 가서 연간 1000마리 안팎의 고래를 잡아 고기를 유통했다. 일본 포경선의 잔혹한 고래 사냥 장면이 여러 차례 방송돼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지만, 일본은 물러서지 않았다. 2019년 국제포경위원회에서 탈퇴해 일본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 내에서 상업 포경을 재개했다. “고래잡이와 고래고기 식용은 일본의 오랜 전통이자 고유한 문화”라고 항변하지만, 여기에 동조하는 이는 많지 않다.

우리도 일본을 비난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1년에 1000~2000마리 고래가 혼획·표류·좌초 등으로 희생된다. 그중 60~70%를 차지하는 게 서해와 남해 연안에 주로 사는 상괭이다. 2020년 국내에선 1353마리의 고래가 혼획 등으로 희생됐는데 상괭이만 866마리였다. 상괭이는 우영우가 “주둥이가 뭉툭하고 등에 폭이 좁은 융기가 있습니다. 얼굴은 꼭 웃는 것 같아서 귀엽습니다”고 한 고래다. ‘세젤귀’(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세젤예’(세상에서 제일 예쁜)로 불리곤 한다.

‘웃는 고래’ 상괭이는 지금 웃을 수 없는, 비극적 상황에 놓여 있다. 1973년 체결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 부속서에 1급으로 등재된 멸종위기종이다. 우리 주변 해역에만 6만 마리가 살았지만, 최근 1만5000마리 이하로 개체수가 급감했다. 해양수산부는 2016년 말 상괭이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하고 포획·채취·유통·보관·훼손을 금지했다. 그런데도 상괭이가 혼획되는 이유는 안강망 등 대형 그물을 이용한 어업 방식 때문이다. 정부가 그물에 잡힌 상괭이가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망을 보급하고 있지만, 다른 물고기도 빠져나가 어획량이 준다는 등의 이유로 환영받지 못한다. 선진국에선 고래가 기피하는 음파나 빛을 내보내는 장치를 그물에 달아 혼획을 막는 첨단기술까지 개발해 효과를 보고 있다.

한국에선 고래 보호에 ‘야생동물 보호·권리법’ ‘해양생태계 보전·관리법’ ‘수산업법’ ‘수산자원관리법’ 등을 준용한다. 미국은 1972년 해양포유류의 부상이나 사망을 막기 위해 해양포유류보호법을 제정했다. 국내에서만 적용하던 이 법을 내년부터는 미국으로 수산물을 수출하는 모든 국가로 확대한다. 해양포유류의 우발적 사망이나 부상을 야기하는 어업으로 생산된 수산물이나 수산물가공품의 미국 수출을 제한하는 것이다. 고래와 공존하길 원한다면, 고래 보호에서도 선진국이길 자부하고 싶다면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

송세영 문화체육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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