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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청와대를 고작 미술관으로 바꾼다고?(2)


‘미술 과잉’의 한국 사회다. 가을이면 전국에 단풍 축제처럼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인천국제공항에도 한강변에도 미술 행사가 열린다. 빈 건물만 생겨도 미술관으로 바뀐다. 서울 여의도 지하 벙커도, 당인리발전소도 미술관이 됐다. 국민에게 개방한 청와대도 미술관으로 바뀐다. 이는 미술 과잉을 넘어 ‘미술 만능’(혹은 상상력 부족)이 된 한국 사회의 화룡점정 같다.

용도 폐기된 건물을 미술관으로 바꾸는 건 근대화를 먼저 겪은 서구에서 시작했다. 산업화가 끝나며 시대적 소임을 다한 옛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 선박을 만들던 조선소였지만 지금은 베니스비엔날레 개최 장소가 된 이탈리아 아르세날레 등이 그런 예다. 특히 과거의 혐오시설이 예술의 옷을 입고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은 바람직하다. 우범지대가 됐던 옛 도살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프랑스 파리의 라 빌레트 공원은 몇 번이라도 참고해도 좋을 모델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근대 건물이다. 청와대 그 자체가 보존돼야 할 역사적·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다. 광복 이후 격동의 한국사를 이곳만의 렌즈를 통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지난달 말 청와대 야간 관람 행사 때 둘러보니 대통령 집무실과 영부인실 등을 갖춘 본관, 고즈넉한 정원이 딸린 관저, 상춘재 등은 그 자체가 대한민국 외교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과거의 용도가 폐기됐다고 해도 유행을 따라 미술관으로 둔갑시킬 곳이 아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와대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 때 밝히면서 ‘원형 보존’을 한껏 강조했다. 하지만 본관과 관저, 영빈관, 상춘재 등은 애초 전시장 용도로 건축되지 않았다. 그런 곳에 미술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항온항습 기능을 갖추고 전시용 조명을 달고 천장 레일 등을 설치하기 위한 리노베이션이 불가피하다. 원형 훼손이 불 보듯 뻔하다. 청와대 건축물과 내부 시설은 거기 걸린 그림 하나, 샹들리에 하나, 책상과 가구 하나까지 후손들과 고스란히 호흡돼야 할 역사인데 말이다. 그런 장소를 어떻게 미래세대에게 보여줄지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일이 오히려 문체부의 책무 아닐까.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미국 워싱턴 대한제국 공사관까지 정부 예산을 들여 복원한 마당 아닌가. 더욱이 “대한제국 공사관의 문화적 가치와 외교적·역사적 의미를 발굴해 재조명하고, 공사관이 국가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여한 분”이 장관으로 있는 문체부 아닌가.

청와대가 있는 삼청동 일대는 우리나라 최대 미술관 집결지다. 이미 국립현대미술관이 있고 앞으로 국립이 될 ‘이건희 미술관’도 그곳에 생긴다. 그런 마당에 청와대에도 옥상옥처럼 미술관을 만들고,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하겠다니 콘텐츠의 빈곤이 들여다보인다. 문화재청의 의뢰를 받은 청와대 활용 방안 용역 결과가 나오기 전에 문체부가 서둘러 청와대를 미술관으로 용도변경하겠다고 밝힌 진짜 이유는 뭘까. 문체부의 관할을 늘리고자 하는 부처 밥그릇 챙기기 욕심 말고는 해석이 안 된다. 박보균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1단계로 청와대를 개방한 데 이어 2단계에서는 문체부가 전반적으로 주도해서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미술기획자 출신인 김건희 여사의 개입설까지 나온다. 비상식적 과속 결정이 억측을 낳는 요인이 됐다.

문체부는 31일부터 옛 청와대 기자회견장인 춘추관에서 ‘장애예술인 특별전’을 한다. 굳이 미술관으로 쓴다면 이처럼 춘추관이나 비서동(여민관), 야외 정원에 국한했으면 한다. 본관과 관저, 영빈관, 상춘재 등 근현대사를 간직한 ‘문화재’는 그대로 뒀으면 한다. 미술이 역사를 대체할 수는 없으니까.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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