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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빌라왕

태원준 논설위원


2013년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100억원대 자산가의 전직은 환경미화원이었다. 서울 중구에서 청소차를 몰던 그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서울 행당동 재개발지역에 두 평 자투리땅을 샀는데, 값이 뛰어 연봉만큼 차익을 남겼다. 부동산에 눈을 뜨면서 서울 구도심 빌라 투자에 올인했다. 사들이고 지어가며 48채까지 보유한 그에게 이 프로그램은 ‘빌라왕’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그런데 3년 뒤 고소를 당했다. 인터넷 카페 회원들에게 고수익을 약속하며 3억원대 부동산 투자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였다. 빌라 사업이 잘 안 풀리자 벌인 일이었고, 결국 사기죄로 법정구속됐다.

빌라 자산가를 뜻하던 빌라왕은 이후 빌라 사기범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2019년 등장한 ‘강서구 빌라왕’ J씨는 594채를 임대했다. 애초에 부동산 중개업자, 분양 대행업자 등과 결탁한 사기였다. 신축 빌라의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고 그 액수만큼의 전세금에 세입자를 들인 뒤 전세금을 분양업자 중개업자 임대업자가 나눠 가졌다. 임대업자 역할을 맡은 그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집주인이 되면서 전세금에서 자기 몫을 수중에 챙겼다. 세입자에게 돌려줄 생각이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빌라 594채에서 전세금 350억원을 떼먹은 그는 잠적했고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이런 전세사기 빌라왕은 부동산 폭등기였던 지난 몇 년간 여럿 출몰했다. 490채 L씨, 283채 K씨, 524채 세 모녀…. 최근에는 수도권에서 1275채를 갖고 사기 행각을 벌인다는 ‘빌라 황제’ 의혹도 제기됐다. 피해자들의 전세금 반환소송 의뢰가 잇따르자 한 법무법인은 블로그에 요주의 빌라왕 5명의 실명을 적어놓고 대처 요령을 안내하고 있다.

얼마 전 검찰이 세 모녀 전세사기단을 기소한 데 이어 서울 양천경찰서가 또 다른 빌라왕 이모씨를 검거해 구속 송치했다. 서울 경기 인천에서 479채를 해먹었다고 한다. 빌라 전세금은 서민들이 살아가는 밑천이다. 이를 털어가는 짓은 가정파괴 범행과 다르지 않다. 범죄와의 전쟁은 이런 자들을 상대로 벌여야 한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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