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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대호국 ‘한옥판 베네치아’로 만들고 싶었죠”

[창·작·가] 미술감독 이종건

tvN 드라마 ‘환혼’의 배경이 되는 가상국가 대호국의 전경. 주인공 장욱과 무덕이가 서 있는 다리는 두 사람의 로맨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장소다. tvN 제공

‘역사에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은 큰 호수에 둘러싸여 있다’. tvN 판타지 드라마 ‘환혼’에 나오는 대호국에 관한 설명이다. 활자로만 쓰인 배경과 설정을 누군가는 현실에서 재현해 시청자 앞에 내놓는다.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 미술 감독이다.

‘환혼’의 대호국은 이종건(46) 미술감독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이 드라마는 가상 국가 대호국을 배경으로 수기를 다루는 술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대규모 운하가 흐르는 대호국의 모습은 판타지물의 신비로움을 더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설정이었다.

tvN 드라마 ‘환혼’의 이종건 미술감독이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대호국을 만드는 작업은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다. 대호국을 디자인하는 프리 프로덕션에만 5개월가량 걸렸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지난 22일 만난 이 감독은 “조선을 모티브로 할지, 그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할지 전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님이 자유롭게 구상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대호국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이 된 건 과거 서라벌을 3D로 복원한 자료였다. 대호국처럼 운하가 흐르던 서라벌의 모습을 토대로 대호국의 윤곽을 잡았다. 이 감독은 “너무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지만 화사한 느낌의 도시로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건축물을 디자인할 때는 “한국의 선을 최대한 활용해 달라”는 연출 감독의 주문을 반영했다. 그렇다고 역사 속 그대로의 한옥을 고집하고 싶진 않았다. 판타지물이기 때문에 신비하면서 세련된 느낌이 필요했다.

이 감독은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가기 전 두 달 정도 시간이 있었다. 그때 전국의 고택을 많이 돌아봤다”며 “각종 박물관과 경복궁, 종묘, 사직을 참고했다. 대신 내부적으로는 현대적인 느낌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왕은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고, 세자는 테이블 의자에 입식으로 앉게 하는 식이었다. 어른들은 좌식이 편하고, 젊은 세대는 입식이 편한 지금의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화려해서 잘 쓰지 않던 꽃문양의 창살도 썼다.

고증에 얽매이지 않는 헤어스타일과 의상도 그가 대호국의 분위기를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 등장인물들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거나 상투를 버리고 현대 남성들처럼 머리를 짧게 잘랐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헤어스타일을 자유분방하게 정함으로써 그에 맞춰 세트와 소품의 톤 앤드 매너(전체적인 분위기와 스타일)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대호국에서 통용된 문자가 한자 대신 한글이라는 설정도 시대 배경에 얽매이지 않고 대호국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됐다.

박당구(왼쪽)와 서율이 대호국의 수로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tvN 제공

대호국은 설계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세트장을 짓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드라마 촬영장에서 한옥으로 대규모 야외 세트를 짓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대호국의 상징인 수로를 만드는 작업이 특히 까다로웠다. 세트의 구조물이 많은 양의 물을 버틸 수 있어야 하고 물이 새지 않아야 했다. 다 짓고 나서도 여러 변수가 있었다. 날씨 때문에 수로가 얼 수도 있다. 비가 많이 올 때에 대비해 배수로도 확보해야 했다. 물을 뺐다가 다시 넣는 상황도 고려했다. 이 감독은 “원래 운하를 더 길게 만들어서 한옥판 베네치아를 만들고 싶었으나 여러 제약에 부딪혔다”고 아쉬워했다.

대호국 주요 기관은 다양한 건축기법을 활용해 구상했다. 수기를 다루는 술사를 양성하고 대호국 최대의 상단을 가진 대호국 핵심 시설인 송림은 창덕궁 주합루를 참고해 2층 건물로 웅장하게 만들었다. 교육기관인 정진각 외부는 부용지의 ㅁ자 형태 연못을 모티브로 연못이 마당 전체를 채우게 디자인했다. 수로가 있는 대호국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극 중 음모의 진원지인 천부관은 어두운 소재의 우드톤을 사용하고 여성 술사가 많은 진요원은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여성 술사가 많은 진요원의 연못과 정자. tvN 제공

이 감독이 만들어낸 세트의 미장센은 극 중 로맨스가 펼쳐질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장욱(이재욱)과 무덕이(정소민)가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들은 수로가 놓인 다리 위에서 아름답게 그려졌다. 박당구(유인수)와 진초연(아린)의 만남은 송림의 2층 테라스에서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이뤄졌다.

대호국의 야경은 일반적인 사극보다 밝은 톤이다. 이 감독은 “(연출을 맡은) 박준화 감독이 ‘사극을 보니까 밤이 너무 어둡더라. 대호국은 가상 국가니까 밤에도 빛이 많으면 좋겠다’고 주문한 점을 반영했다”고 전했다. 덕분에 어둠이 깔린 하늘과 대조되면서 영상미도 극대화됐다.

촬영 세트 외에 소품 준비에도 이 감독의 손이 닿았다. 극 중에는 환혼인을 알아보는 삽살개 귀구가 등장한다. 문제는 ‘귀구가 항아리에서 나온다’는 설정이었다. 삽살개가 항아리에서 나오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 수 있도록 CG팀과 논의를 거듭했다. ‘낙수가 새 모양의 호각(피리)을 분다’는 짧은 문장을 보고도 고민이 깊었다. 새도 종류에 따라 다양한데, 어떤 새의 모양을 본 따 호각을 만들 것인지 감을 잡아야 했다.

이 감독은 “대본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심쿵’(심장이 쿵)한다”며 웃었다. 이어 “환혼할 때 쓰는 얼음돌의 경우 실물로 쓸 것인지,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쓸 것인지 논의했다. 송림의 문패를 문에 댔을 때는 문이 어떤 방식으로 열릴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술사들이 수기를 날리는 장면은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 사람의 혼이 뒤바뀌는 환혼 장면은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고민하며 CG팀과 머리를 맞댔다.

이 감독이 직접 소품을 만들기도 했다. 장욱의 어머니 도화와 진씨 집안의 첫째 딸 진부연의 초상화다. 이 감독은 “전통 초상화를 그리는 작가에게 맡기면 너무 전통적일 것 같았다. ‘젊은 술사들의 이야기’라는 ‘환혼’의 콘셉트에 맞춰 내가 그렸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이번에 처음으로 드라마 미술 감독을 맡았다. 그동안 ‘봉오동 전투’ ‘극한직업’ ‘해적’ ‘도리화가’ 등 주로 영화의 미술 작업을 맡았다. 판타지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기 때문에 ‘환혼’은 즐겁게 작업했다.

그는 현재 모든 작업을 그가 운영하는 회사 ‘더 톤’의 직원들과 함께하고 있다. 이 회사는 10년 전에 차렸다. 대학에서 인테리어를 전공한 이 감독은 원래 건축물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도 좋아해 영화나 CF 인테리어와 관련한 일을 하기로 했다.

그는 ‘많이 보고 많이 기억하자’는 주의다. 평소에도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눈에 담으려 한다고 했다. 이 감독은 “영화 ‘드림’(미개봉) 때문에 헝가리에 한 달 동안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건물만 보고 돌아다녔다”며 “석양 같은 풍경에는 관심도 없고 다리 밑 철제구조 같은 것을 유심히 들여다보곤 했다”며 웃었다.

이 감독은 자신의 직업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덕분에 콘티(구성안)를 그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건축물에 관심이 많아 이곳저곳 답사를 다니는 것도 즐거웠다.

“가능한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그에게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환혼’처럼 특별한 이야기를 많이 해보고 싶어요. ‘왕좌의 게임’이나 ‘신비한 동물사전’ 같은 판타지 시대물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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