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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생생 고택·오랜 성냥공장이 품은 따뜻한 그리움

‘남겨진 기억’ 따라 경북 의성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 ‘만취당’ 일대. 만취당은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갖추고 사방이 트여 있어 시원한 풍경을 내다볼 수 있다.

붐비지 않다. 숨은 볼거리가 많다. 알려진 것보다 알려질 게 많은 곳. 고즈넉한 정취와 예스러움을 간직한 곳. 수많은 고택이나 종택 등 옛 것들이 다른 지방과 다르다. 관람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만이 잠시 머무는 박제된 여행지가 아니다. 조상들이 짓고 살았던 집에는 지금도 후손들의 숨결이 생생하다. 경북 의성이다.

의성의 대표적인 옛 마을은 북부의 반촌 ‘사촌(沙村)마을’이다. 점곡면 면소재지인 사촌3리와 서변2리 일부에 걸쳐 있다. 김자첨(1369~1454)이 안동에서 옮겨와 개척한 마을이다. 안동김씨와 풍산류씨, 안동권씨의 집성촌이다.

마을 이름이 붙은 유래는 주변의 협곡에 의해 사토가 퇴적돼 마을의 땅이 비옥하기 때문에 사촌이라고 붙여졌다는 설과 중국 동산시절에 서유자라는 선비의 고향이 사진촌 또는 사촌이었는데 안동김씨 입향조가 서유자를 동경해 이름을 지었다는 얘기가 있다.

송은 김광수, 서애 류성룡 등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대과에 급제한 사람이 18명, 소과에 급제한 사람이 31명이나 된다. 마을 전설에는 이 마을에 3명의 정승이 태어난다고 한다. 신라시대 나천업, 조선시대 류성룡에 이어 또 한 사람이 더 나올 거라고 주민들은 기대한다.

오래된 마을이지만 집들은 대개 100년 안팎의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고 해서 왜군들이 불태웠고, 구한말 병신의병이 일어나자 일본군이 또다시 마을을 불태웠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택은 1582년(선조 15)에 지은 만취당(보물 제1825호)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사원이 3년간 세운 건물이다. 가장 오래된 사가(私家)의 목조건물이라 전해진다. 만취당은 김사원의 호다. 건물 만취당은 사랑채 격이다.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갖춘 대형 건물로, 바람이 잘 들게끔 사방이 트여 있다. 만취당의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진다.

만취당 옆에는 높이 8m의 향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수령 500년으로 추정된다. 김사원의 증조부이자 류성룡의 외조부인 송은 김광수가 심었다고 한다. 만 년 동안 푸르게 살라는 의미를 붙여 만년송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름 때문에 소나무로 오해받기도 한다.

가로숲을 공중에서 내려다본 모습. 삶의 터전을 보호하려고 심어 둔 울창한 방풍림이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매력에 힘입어 명소가 됐다.

마을 앞에는 지형을 보완하기 위한 가로숲이 있다. 천연기념물 405호이다. 김자첨이 이주해 오면서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해 샛바람을 막아 삶의 터전을 보하려고 심어 둔 10여 종 500여 그루의 방풍림이 울창하다. 방풍림 역할뿐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다양한 매력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명소가 됐다.

의성에서 옛 정취가 그득한 또 다른 옛 마을은 금성산을 마주 보고 있는 남쪽의 산운마을이다.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산운마을’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명종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이 이곳에 입향을 하면서 영천이씨의 집성촌이 됐다. 학록정사를 비롯해 소우당, 운곡당, 점우당 등 전통 고가옥 30여 채가 조선시대 반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가장 빼어난 고택은 소우당이다.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마당을 감싸고 있다. 안채의 바깥에다 돌담을 두르고 별당건물을 배치했다. 안채보다 한국식 전통 정원이 있는 별당이 더 유명하다. 부드러운 곡선미가 절경인 연못과 다양한 수석, 그리고 나무들이 운치를 더해 ‘영남 제일의 정원’으로 불린다.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병풍처럼 둘러놓은 돌비석이 눈길을 끈다.

의성읍 도동리 성광성냥. 공장 외벽에 성냥개비를 활용해 마지막까지 근무한 직원들을 모자이크 기법으로 구현해 놓은 작품이 인상적이다.

의성에서 아쉬운 옛것은 의성읍 도동리 성냥공장이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 2월 설립된 성광성냥은 70여년 간 지역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며 경북 향토뿌리기업 및 산업유산에 선정됐다. 하지만 가스라이터 개발 및 값싼 중국산 성냥에 밀려 쇠퇴기로 접어들다 2013년 11월 폐업했다.

성광성냥의 손진국 대표는 2020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성냥공장이 관광자원이든, 문화유산이든 활용돼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기를 바랐던 그는 공장 터와 건물, 성냥 생산 설비 190점 등을 의성군에 기증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 유휴공간 문화 재생 대상지 공모’에 선정돼 의성 근대산업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으로 복원·재생중이다.

성냥마을은 의성군의 2차 ‘마을미술프로젝트’ 이후 많이 달라졌다.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주민들을 모티브로 한 ‘발화(發話), 남겨진 기억의 풍경’이다. 성냥공장에서 의성장터에 이르는 골목 곳곳에 그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미술 작품으로 진행됐다.

쇠로 된 글자 간판을 단 의성대장간.

장터로 들어간 마을미술은 의성대장간 앞에서 끝난다. 60여 년간 장터에서 쇠를 두드리고 벼려 온 장인의 대장간은 쇠로 된 글자 간판을 달았다. 대장간 전면 빨간 철판에 낫과 호미 같은 농기구 그림과 함께 ‘환하게 따뜻한 그리운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여행메모
금봉휴양림·탑산온천 등 숙소
마늘한우·레트로 카페도 인기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로 가려면 당진영덕고속도로 북의성나들목이 가깝다. 사촌마을에서 의성읍내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11㎞ 떨어져 있다. 산운마을은 의성의 남쪽에 자리한다. 중앙고속도로 의성나들목이 편하다.

산운마을에서 금봉자연휴양림이 멀지 않다. 게르마늄 온천수가 나온다는 탑산온천은 모텔을 겸하고 있다. 사촌마을 민산정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

의성은 마늘을 먹여 키운 ‘마늘한우’로 유명하다. 탑산온천 아래 봉양면 도원리에서 값싸게 먹을 수 있다.

의성전통시장 의성대장간 바로 앞에 레트로 느낌의 카페 ‘향촌당’이 있다. 100년 넘게 이어오던 방앗간과 솜틀집의 목조건축물 원형을 살려 카페로 재탄생된 곳이다. 카페 한가운데 130년 된 솜틀 기계도 놓여 있다.





의성=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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