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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내리는 커피] 커피 가격 양극화의 비극

이길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지는 사회, 바로 양극화 사회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도 양극화 문제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 영순위가 됐다. 경제 위기 이후 급격히 진행되기 시작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종 양극화, 이를 반영한 소득 양극화와 함께 최근에는 이념 양극화도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양극화가 초래하는 위화감과 적대감은 개인의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국가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기에 우려할 현상이다. 명품을 일상품처럼 사용하는 상류층의 오만은 양극화가 가져올 수 있는 비극을 잉태시킬 수 있어 경계해야 마땅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 상위 1%가 전체의 12.1%를, 상위 10%가 44.1%를 차지하고 있다. 부의 경우 각각 25.9%와 66.0%에 이른다. 상위 10%가 차지하는 자산 비중에서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양호하지만 프랑스를 포함한 다수의 유럽 국가보다는 나쁘다. 현상 자체도 우려되지만 점점 더 악화되는 흐름이 문제고 상류층 태도가 문제다. 양극화는 커피 소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 잔 900원 커피가 있는 반면 4만원 이상인 커피도 있다. 스페셜티 커피 운운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몇백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도 있다.

커피 역사에서도 양극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에 이어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이들보다 일찍 이탈리아는 커피 생산국 에티오피아를 공격했다. 커피 원두의 국제적 유통이 어렵게 되고 군대용 커피 수요가 폭증하자 커피가 귀해졌다. 커피가 귀해지자 가짜 커피가 유통되고, 커피 애호가들은 대용 커피라도 마셔야 했다. 1938년 동아일보는 대용 커피 기사를 3회 연재했다. 첫 회에서는 국제수지 완화를 위해서는 평시에도 대용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재료로 무화과·대맥·낙화생·대두 등을 소개했다. 두 번째 회에서는 현미 커피를 권장했고, 세 번째 회에서는 맥주용 맥아를 사용한 커피를 제안했다. 실제로 1941년에는 대용 커피 생산공장이 원산에 세워졌다. 매년 5000석의 대두를 이용해 대용 커피를 생산할 규모였다.

맛없는 대두 커피를 마시는 것 자체는 참을 수 있었다. 미국인들은 백합 뿌리로 만든 커피를 마셨고, 프랑스인들은 치커리 커피를 마시는 시절이었다. 미국인들이 마시는 대용 커피 재료인 백합 뿌리는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갔었다. 그런데 진주만 공격 이후는 이것마저 중단됐다. 결국 담배꽁초, 연탄재, 벽돌가루 등 이물질이 들어간 커피가 기승을 부렸다.

1930년대 후반 커피를 좋아하던 사람들, 일명 커피당들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수준 낮은 대용 커피 맛이 아니었다. 커피 생산국 브라질 소식이었다. 커피로 기름을 생산하고 비타민, 건축 자재, 염료를 만드는 등 커피 가격 안정화를 위한 노력이 통하지 않자 커피를 대규모로 소각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없어서 못 마시는데 저들은 남아돌아서 버린다는 것이 주는 심리적 고통이 더욱 심했다. 양극화 현실보다 무서운 것이 상대적 박탈감이다.

이길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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