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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초입이었던 6월, 베란다 한쪽에 놓아둔 작은 화분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세종시 생활을 시작하며 함께 성장하자는 의미로 들여온 어린나무였다. 수종은 ‘행복나무’인데, 연갈색 목대가 손가락 두께밖에 되지 않아 나무라기보단 나뭇가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리는 외모다. 그래도 30㎝ 가까운 키에 꽤 풍성한 잎을 늘어뜨리고 있어 집안에 초록색 생기를 불어넣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한데 그 나무가 ‘SOS’를 외치고 있었다. 마치 모든 잎을 떨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광택이 나던 잎사귀는 빛을 잃고 시들시들 고개를 숙였다. 일부는 안색이 누렇게 변했다. 새로 자라던 여린 이파리들은 마른 입술처럼 몸을 웅크렸다. 식물 초보자인 나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행복나무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나무는 실내 적응력이 뛰어나고 관리가 쉬운 축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나무가 이유도 모른 채 앓고 있으니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경험도 없으면서 괜히 어린나무를 데려와 고생시키나 하는 가책이었다. 달력에 물 주는 날짜를 표시하고, 수시로 창문을 열고, 해가 잘 드는 시간에 블라인드를 걷으며 이 정도면 충분한 돌봄이라 여겼는데 나무는 그것이 아니었다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시무룩해지는 나무를 보며 긴급 처방에 들어갔다. 식물을 처음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과습이다. 내 경우엔 오히려 물을 주는 주기가 너무 길었던 것이 문제로 보였다. 곧바로 주기를 짧게 바꾸고 평소보다 자주 들여다보며 상태를 살폈다.

한 달 뒤 내린 결론은 나무가 이미 병들었다는 것이었다. 햇볕과 바람과 물이 분명 나무를 ‘연명’하게 하고 있었지만 한번 잃어버린 기력까지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채도가 한층 낮아진 잎사귀들은 점점 얇아지고 얼룩덜룩한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도 유형의 존재감이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작은 조명처럼 베란다를 밝히던 생명이 꺼지고 있었다.

그 원인을 찾은 건 몇 주가 더 지난 시점이었다. “깍지벌레가 생겼네.” 집에 방문한 엄마는 행복나무 이파리를 들춰보더니 몇 초 만에 이런 진단을 내렸다. 벌레가 있다니. 몇 달씩 나무를 곁에 두면서 꿈에도 생각지 못한 단어였다.

알고 보니 깍지벌레는 움직이는 벌레가 아니라 잎이나 줄기에 딱쟁이처럼 붙어 기생하는 고약한 놈이었다. 잎사귀를 한 장 한 장 앞뒤로 관찰하며 불투명한 흰색 벌레를 떼어내는 작업이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살아날 가망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반쯤은 미안함에, 반쯤은 벌레에 대한 괘씸함에 매달렸다. 식물의 잎맥을 그토록 가까이 들여다본 것도, 나무 이파리를 그리 오래 매만진 것도 초등학교 과학 수업 이후 처음이었다.

깍지벌레와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고 느꼈을 때였다. 나무 끝에 싱그러운 연둣빛이 맺혔다.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줄기가 한 뼘쯤 자랐을 때 누런 잎을 겨우 잡고 있던 아픈 가지들을 잘라주었다. 그러자 탄력을 받은 줄기들이 무서운 속도로 뻗어 나가 며칠 만에 완전히 새로운 수형을 만들어냈다. 나무를 돌본 것은 나였지만 그 에너지는 나무가 가지고 있던 본연의 것이었다. 죽어가는 나무도 낯설었지만 생명력을 거침없이 뿜어내는 모습은 더욱 낯설었다. 신비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했다.

30년 동안 아픈 나무를 돌본 ‘나무 의사’ 우종영씨는 한 번 싹을 틔운 곳에서 평생을 뿌리내려 살아야 하는 나무의 삶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저서에서 “나무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고 어떤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며 “그런 버팀의 시간 끝에 나무는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다”고 했다.

나는 나의 작고 어린나무를 바라보며 그 말을 곱씹곤 한다. 동시에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나무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이 나의 관심이었다면, 나무보다 더 쉽게 흔들리고 아파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누군가의 따뜻한 눈길과 마음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고, 끊임없이 주위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여름을 보내는 길목에서 나도 나무를 통해 배운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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