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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사정 정국의 불안한 미래

남도영 논설위원


장경상 대통령실 정무2비서관은 임명되기 전인 지난달 한 인터넷 웹진에 ‘윤 대통령 바뀔까? 네 갈래의 길’이라는 칼럼을 올렸다. 당시 20%대 지지율을 기록한 윤석열 대통령의 정국 운영 전망을 다룬 글이었다. 장 비서관이 제시한 세 번째 길은 ‘사정 정국’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필두로 정치권 전체가 대상이 될 수 있고, 기업도 사정권에 들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장 비서관은 사정 정국을 ‘대통령도 힘들고 국민도 힘든 길’이라고 표현했다. 사정 정국으로 가면 경제가 뒷전으로 밀리니 국민은 민생의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정치권을 수사하면 대통령 주변도 예외일 수 없으니, 대통령도 이 부분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도 힘들고 대통령도 힘든 길이라는 주장이다. 대대적인 쇄신을 하는 길, 현상 유지를 택하는 길, 소규모 개선을 시도하는 길도 함께 제시됐다.

요즘 상황을 보면, 윤 대통령은 힘든 길로 가고 있는 듯하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이 대표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했고, 변호사비 대납 의혹 수사도 탄력이 붙었다. 검찰은 대장동 사건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재명 수사는 뭔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여권 내부를 보면 친윤 그룹이 앞장서 이준석 전 대표 ‘제거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여러 무리수가 동원되고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라는 비판이 나왔다. 친윤 그룹은 괘념치 않는다.

수사는 윤 대통령과 검찰 출신 참모들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일 것이다. 다만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 우선 공정의 문제다. 야당에 사정의 칼을 들이대려면 윤 대통령 주변이나 여권에도 예외가 없어야 한다. 검찰의 수사는 선명한 이분법 구조다. 선악이 분명하다. 범죄자는 악이고 이를 단죄하는 검찰은 선이다. 검찰이 범죄자를 수사하면서 자신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휘두르는 칼은 다르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수사하려면 대통령도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가장 약한 고리가 김건희 여사다. 민주당이 스토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집요하게 김 여사를 공격하는 이유다. 윤 대통령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를 향해 칼을 휘두르려면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여기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김 여사와 관련된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공정’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김 여사에게 법적인 하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적 의혹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풀어야 한다. 대통령의 사정은 검찰의 수사와 다르다. 사법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다. 과거 정권에도 억울한 측근과 억울한 친인척들은 많았다.

두 번째는 사정 정국을 밀고 나갈 힘이 있느냐다. 윤석열정부는 힘이 약한 정부다. 지역적 기반이 약하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강원도, 장제원 의원은 부산,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충남이 지역구다.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자 윤 대통령은 대구 서문시장부터 찾았다. 보수의 텃밭부터 다지자는 다급함의 발로였을 것이다. 원내에서도 약자다. 169석의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새로운 정책 시도가 불가능하다. 검찰이 당 대표를 겨냥하는데, 민주당이 협조할 리 없다. 측근 그룹도 취약하다. 친윤 그룹은 이준석 전 대표와의 전투 와중에 대부분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윤 대통령이 경제 관료들과 검찰 출신을 중용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사정 정국이 성공하려면 국민의 힘찬 박수를 받아야 한다. 직전 대선에서 1600만표(47.83%)를 얻은 원내 1당 대표가 격렬히 저항하면 국민적 동의를 얻기 쉽지 않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초반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사정 정국에 따르는 고독과 책임을 견딜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사정 정국이 성공하려면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가를 지불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면 사정은 성공하기 어렵다. 유일한 해법은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는 일이다. 사정 정국도 어렵지만, 정치적 타협도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좋지 않은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계속 직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멈추거나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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