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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의 입체 조각과 숨바꼭질 하는 재미에 빠져 보세요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서 열려

조각가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조각가 문신(1922∼1995)의 이름은 모를 수 있다. 그래도 서울 송파구 올림픽조각공원에 가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은 기억할 수 있겠다. 하늘을 향해 은색 방울 모양 기둥 2개가 용틀임하며 승천하는 거대한 용 두 마리처럼 서 있는 그 스테인리스 조각 작품 말이다. ‘올림픽 1988’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은 당시 미술계에서 조각가 문신이 차지한 위상을 보여준다.

정부는 서울올림픽 때 문화행사 격인 세계현대미술제를 열면서 전 세계 유명 작가를 초청해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작가가 현장에서 작품 제작하는 미술전 형식)을 개최했다. ‘엄지손가락’으로 유명한 프랑스 세자르 발다치니 등 약 40명의 국내외 거장 가운데 문신도 포함됐던 것이다.

1970년에 종이에 사인펜으로 그린 드로잉과 이것을 현실화시킨 올림픽조각공원의 ‘올림픽 1988’. 손영옥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관에서 문신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문신: 우주를 향하여’를 연다. 문신은 일제강점기 현해탄을 건너 규슈의 탄광촌에서 광산 노동자로 일하던 마산(현 창원)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부터 극장 간판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벌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나중에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기 위해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해방 후 화가로 살던 그는 61년 파리로 갔다. 그 때 학비를 벌충하기 위해 중세 고성을 복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 속에 꿈틀거리는 조각가로서 기질을 발견하고 진로를 조각으로 바꿨다.

전시에는 조각 작품(95점)이 대거 나와 ‘조각가 문신’을 조명할뿐 아니라 회화(45점)와 드로잉(수백점)도 다량으로 나와 뜻 깊다. 올림픽조각공원 그 조각 작품의 구상에 대한 단서를 주는 드로잉도 있다. 놀랍게도 1970년에 그렸다. 이처럼 1968년의 드로잉이 1980년에, 1967년의 드로잉이 1991년에 조각으로 구현되는 등 구상했던 것이 실현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적지 않아 문신 작가의 집념에 감탄하게 된다. 전시장에서 드로잉으로 구상한 평면적 이미지들이 어떻게 입체 조각으로 구현됐는지 숨바꼭질하듯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문신의 조각은 좌우대칭과 곡선의 변주를 통해 식물의 씨앗, 동물의 몸체 등 자연 생태계의 신비를 연상시킨다. 생긴 게 허리가 잘록한 개미의 몸체 같아 ‘개미’라고 제목이 붙여진 연작도 있다. ‘88올림픽’처럼 수직 상승하는 형태는 ‘우주를 향하여’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흑단 조각 ‘무제’(1978년 작). 손영옥 기자

‘집념의 예술가’ 문신의 면모는 그가 일본에서 고학하면서 번 돈을 고향 마산의 부친께 보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땅을 사게 하고, 나중에 그 땅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짓는 드라마틱한 과정에서도 엿보인다. 작가는 직접 설계했을 뿐 아니라 작품이 팔릴 때마다 조금씩 건축 자재를 사서 모아 문신미술관을 지었다. 1980년 프랑스에서 영구 귀국한 뒤 착수해 완공까지 14년이 걸렸다.

드물게 가로로 된 흑단 조각 ‘무제’(1977년). 손영옥 기자

문신은 1980년 파리에서 돌아와 마산에서 개인전을 가졌을 때 조각 작품이 ‘완판’ 됐을 정도로 조각가로서는 드물게 인기를 누렸다. 이번 전시의 매력은 이처럼 대중에게 조각가로만 널리 알려진 문신을 화가로서 재조명하는 것이다. 조각으로 돌아서기 전에 작업했던 회화 작품들이 대거 나왔다. 21세 때 그린 ‘자화상’(1921년), 26세 때 그린 ‘고기잡이’(1948) 등 사실주의 작품에서 시작해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닭장’(1950년대), ‘정물’(1950년대) 등 표현주의 경향의 작품을 거쳐 1960년대 파리 유학 초기의 추상화된 회화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초기에 그린 회화로 이건희 컬렉션인 ‘정물’(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손영옥 기자

문신의 조각 작품들은 나무든 브론즈든 재료와 상관없이 형태감을 강조하기 위해 모두 표면이 매끈하다. 반면에 회화는 마티에르가 두터운 것이 특징이다. 1950년대 초기작부터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데, 이는 한국에서 1960년대 앵포르멜(마티에르가 두터운 추상화)이 나오기 전에 이런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박혜성 학예사는 “일본에서 공부할 당시 서구의 미술 경향을 조기에 받아들인 일본 미술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시장 구성을 하면서 이전 전시에 나온 재료를 재활용하는 등 전시 쓰레기 줄이기에 나선 점도 돋보인다. 문신의 조각이 좌우대칭의 고전주의적인 균형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변화를 주기 위해 조각을 두는 좌대를 유선형으로 재단한 것이 눈에 띈다. 가벽을 없애고 커튼을 활용하고 유선형으로 커팅한 좌대의 안쪽 잘려나간 부분을 다른 곳에 배치하는 등 쓰레기 최소화에 신경을 썼다. 커팅한 좌대의 나머지를 퍼즐 맞추듯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2023년 1월 29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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