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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동네북이 된 목사와 기독교


몇 년 전 만난 한 목회자는 씁쓸했던 기억을 들려줬다. 아이가 어렸을 때 학교에 내는 가정생활 조사서가 있었는데 아버지 직업란을 보니 ‘기타’에 분류돼 있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와 목회자가 동네북이다 보니 목사인 아버지 직업까지 숨기고 싶은 시대가 돼 버렸다.

세상의 미디어들엔 목사를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장면이 넘쳐난다. 최근 에미상을 수상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야비한 수법으로 게임 경쟁자들을 제거하려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목사가 나온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하고 자신만 살겠다며 아집을 부린다. 한 여성 게임 참가자는 목사인 아버지가 성폭행을 한 뒤 기도를 하곤 했다는 얘기를 털어놓는다. 또 다른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학교폭력이 벌어지는 옥상에서 첨탑 십자가가 비치고 좀비 바이러스를 만든 과학 교사가 아들을 성경책으로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는 돈을 위해 살인, 마약 밀매 등 불법을 서슴지 않는 가짜 목사가 나온다. 신도들을 감금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이단 사이비 교주의 모습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드라마에서 한인 목사역은 설정일 뿐이다. 목사가 마약 밀매에 신도들을 동원하는 대목도 실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목사로 연출했다. 맹목적인 기독교 비하이자 집단적 혐오다. 미디어는 세상을 투영한다지만 일부 사이비 교주의 모습을 보편적인 교회 모습인 양 왜곡하고 있다. 특히 정통 교회와 이단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만 키우는 요소로 작용할 뿐이다.

어렸을 적 기억 속의 목사님들은 주의 종으로 존경받고 경외하는 대상이었다. 주일학교에서 본 영화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77년 작)에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형무소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모습이 나온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너를 살리는지 보겠다”며 조롱하는 일본 순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 목사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맨발로 못판을 걸어간다. 성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찬송가를 부른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나 남강 이승훈 선생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일제강점기 기독교는 저항의 상징이었고 기독교인들이 3·1 운동을 주도했다. 1919년 3·1 운동 후 3개월 동안 검찰에 송치된 조선인은 9080명이고 이 중 1979명(21.7%)이 기독교인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자작 사카타니 요시로 박사 유집, 조선문제 잡찬 중 만세소요사건편’).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 땅에 복음을 전하고 병원과 학교를 세우면서 기독교를 전한 지 140년이다. 무지했던 한국인을 깨우고 오늘날 10대 경제 대국의 위상을 뽐내는 대한민국을 만든 뿌리가 기독교이다. 그런데 어쩌다 기독교가 이렇게 불신을 넘어 개그와 드라마의 희화화 대상이 되고 조롱의 대상이 돼 버린 걸까.

가장 큰 원인은 신천지 등 이단들의 비정상적인 행태와 일부 정치 목사들의 일탈 때문이다. 사이비 교주를 맹신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광신도들의 모습과 가정 파괴로 이어지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정통 교회까지 싸잡혀서 욕을 먹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초기 검찰과 술래잡기를 하며 방역에 비협조적이었던 신천지는 교회 이미지를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국민일보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4월 발표한 한국 교회 신뢰도는 18.1%로 2년 전 31.8%, 1년 전 20.9%에서 계속 추락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탈기독교 현상이 심화되는 것도 무관하지 않을 테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고 풍요로워지면서 신이나 종교를 찾는 이들이 줄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만만한 게 기독교다. 잘 모르면서 비판하고 집단 증오의 배출구가 돼 버린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더 자극적이고 더 흥미로운 소재를 찾아내 시청률을 좇는 미디어들의 경쟁적 행태도 기독교 혐오를 부추긴다.

그런데도 개교회주의에 빠진 교회들은 항의도 못한 채 무기력하다. 과도하게 기독교를 비하한 넷플릭스 드라마를 비판한 기사 댓글에는 “기독교가 왜 세상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됐는지 자성해야 한다” “극은 극으로만 봐야 한다”는 부정적 글이 많았지만 “이렇게 하면 불교는 난리를 쳤을 텐데, 기독교는 가만히 있는다”는 일침도 있었다. 곱씹어봐야 할 일이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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