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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10월 1일] 화려함 속에 감춰진 두려움 (예루살렘)


찬송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412장(통 46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2장 1~8절


말씀 : TV에 나오는 상담 프로그램들을 보면 많은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불안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음에도 왜 불안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에 보면 모든 것을 가졌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헤롯왕이 나옵니다. 동방박사들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마 2:2)라는 말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 극도로 불안했던 헤롯왕은 급기야는 두 살 아래의 아기들을 다 죽입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게 했던 그의 두려움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에돔 사람입니다. 유대인이 아님에도 유대인의 왕 노릇을 한다는 것은 출발 자체가 오류입니다. 그의 가문이 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배신과 거짓과 술수가 있었는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왕궁에 살아도, 수많은 군사가 헤롯을 지키고 있어도 작은 아기의 탄생 앞에서 여지없이 평강이 깨지고 두려움이 탄로가 났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가장 큰 원인은 존재론적인 두려움입니다. 나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달아야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아니면 헤롯처럼 에돔 사람입니까.

둘째, 자기가 왕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유대인의 왕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성전을 지어주고, 가이사를 위해서는 도시들을 세우며, 자신의 안전을 위해 요새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화려한 건물도 그의 두려움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가 왕’ 되고 싶은 것입니다. 누군가를 다스리고 싶지 누군가에게 다스림을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왕 자리를 주님께 드리면 ‘의인’이 됩니다. 아무리 화려해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왕으로 살고 싶다면 두려움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두려움은 하나님의 얼굴을 숨긴 상태, 즉 하나님이 없는 상태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죄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헤롯의 근본 문제는 그의 죄악입니다. 이사야서에는 죄악으로 우리가 소멸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사 41:10)이지만 헤롯왕은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왕 헤롯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두려움밖에 모르는 왕, 자기 욕심에만 집중하는 왕이었습니다. 이런 왕이 백성의 고통과 두려움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유대 땅에 ‘평강의 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화려한 건물도 요새와 군인도 필요 없는 평강의 왕이 오셔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제 안에 헤롯과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제안에 평강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저의 출발과 전부가 되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조순미 인천 올리브나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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