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수당 60만원” 보육원 나온 규환이, 성악을 포기했다

[보호종료, 새 동행의 시작] <6> 생계에 가로막힌 청춘의 꿈


수도권 한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조규환(24)씨에겐 10여년 전 보육원 시절부터 간직해온 일기장이 있다. 공책엔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 ‘노래를 해서 성공하고 싶다’는 어릴 적 바람이 적혀 있다.

부모의 이혼 후 5살 때 시설에 맡겨진 조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보육원 합창단에서 활동하며 처음 노래에 흥미를 느꼈다. 크고 작은 상을 받으면서 보육원 합창단원임을 친구들에게 자랑할 정도였다. 그렇게 꿈을 키웠고 고3 때 참가한 콩쿠르 심사위원의 권유로 선교단체의 지원을 받아 입시를 준비했다. 대학 교회음악과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대부분 보육원 친구들은 꿈은커녕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조씨는 그나마 행운이라고 여겼다.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배운 동기들과 비교해 스스로의 실력은 초라해 보였다. 피아노 음을 듣고 음계를 맞추는 청음조차 어려웠다.

무엇보다 보호기간 종료로 시설에서 나와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조씨에게 가난은 공포였다. 처음 보육원에 맡겨진 이유도 ‘부모의 가난’이었다고 그는 짐작한다. 월 60만원도 안 되는 수당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그는 매달 적어도 30만원은 나가는 레슨비와 반주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값비싼 꿈’을 좇다 당면한 생활고는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했다. 새벽에 열이 38도 넘게 올라도 병원비가 두려워 응급실에 가지 않고 버티던 시절이었다. 조씨는 결국 입학 1년 만에 중국어과로 전공을 바꿨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전공이라는 생각에 결정했다. 노래하는 게 재미없어 그만둔 건 아니다”며 “‘후회하지 말자’고 되뇌었지만 지금도 아쉽다”고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대학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 보호종료예정아동의 51.2%는 그 이유로 ‘빨리 취업해 돈을 벌고 싶었음’을 꼽았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업을 중단하고 있는 보호종료아동 414명 중 137명(33.1%)은 그 이유로 ‘경제 사정’을 들었다.


경기도의 한 대학에 다니는 자립준비청년 나병준(가명·20)씨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4살 때부터 시설에서 생활한 그는 글을 잘 쓰고, 쓸 때 행복하단 이유로 고2 때까지 같은 길을 바라봤다. 하지만 누구 하나 꿈을 실현하게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그는 “‘시설에서 나오면 혼자니까, 일단 돈을 벌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양은별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학교 교수 등의 2017년 연구에서도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시설 퇴소 청소년의 상당수는 취업 중심의 주변 조언 등 환경적·비자발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진로를 결정했다.

나씨는 구직이 무난할 거란 생각으로 경영학과 진학을 목표로 세웠지만 학교에서도, 시설에서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는 본인이 원하던 대학에 낙방했다. 성적은 합격권이었지만 전형을 잘못 택한 게 원인이었다고 한다. 나씨는 “제 일을 본인 일처럼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 진학 좌절 이후 외로움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고, 박탈감 때문에 지내던 집에서 이사를 가기도 했다.


이처럼 취업과 진학을 비롯한 진로 문제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당장의 주거·재정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보사연의 2020년 조사를 보면 보호종료아동의 19.4%는 최우선 진로 계획을 묻는 질문에 ‘진로 미정’이라 답했다. 또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3개 지방자치단체 자립통합지원센터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같은 해 펴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래설계’ 분야의 대면 사례관리 수요가 주거와 재정 다음으로 많았다.

그럼에도 보육시설·그룹홈 등 기관 내부에서 내실 있는 진로 교육이나 상담을 기대하긴 어렵다. 인력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 각기 다른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전문성 있는 조언을 해주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준섭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사무국장은 “(그룹홈의 경우) 시설장과 보육사 총 3명이 양육, 자립 준비 등 전반적인 사항을 다 챙겨야 한다”며 “자립전담요원 배치를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부 예산엔 관련 경비가 ‘0원’”이라고 말했다.

진로 활동이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보사연이 732명의 보호종료예정아동을 조사한 결과 271명(37%)은 직업인 특강 등 단순 강연형 프로그램, 167명(22.8%)은 통상 일회성이 짙은 현장견학에 참여했다고 답했다. 284명(38.8%)은 아예 ‘학교 교육활동 이외에 진로체험에 참여한 적 없다’고 했다. 충청 지역의 한 자립지원센터 관계자는 “기존 진로·직업탐색 교육 상당수는 여러 명을 모아놓은 채 진행되고 (교육되는) 직군이나 전공도 바리스타라든지 제과제빵, 기술직 등으로 상당히 제한적”이라며 “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교육도 개별화해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도와주는 어른만 있다면 자립준비청년들은 꿈을 펼칠 수 있는 사례도 있다. 태권도사범이 되고자 전문대 생활체육과에 진학했으나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껴 유아교육과에 재입학을 희망했던 이모(20)양은 올해 입주한 희망디딤돌 경북센터의 소개로 해당 과 교수를 만났고, 입학 전형 등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진로·진학 교육 또한 예산 문제로 귀결된다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한다. 정선욱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진로는) 보호대상 아동·청소년들이 겪는 정체성 고민, 심리적 문제와도 연관된 사안”이라며 “진로·진학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려면 당사자에게 꾸준하고 유기적인 자극·격려·지지·정보가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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