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사나이’ 이재원 “감독은 지역 정서 읽어내는 능력 갖춰야”

‘장사진’ 웰컴 대학로 페스티벌 진두지휘
올 가을 한 달 사이 4개 축제 맡아 진행

웰컴 대학로 페스티벌을 현장지휘하고 있는 이재원 감독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두 팔을 벌리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학로에서 배우를 거쳐 연극 기획자로 활동하던 이 감독은 현재 축제 전문가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 이한결 기자

지난 24일 ‘공연예술 일번지’ 대학로의 왕복 8차선 도로는 종일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부터 혜화역 1번 출구까지 약 500m의 차 없는 도로에서 웰컴 대학로 페스티벌 개막식인 ‘웰컴 로드쇼’가 열렸기 때문이다. 오후 1~9시까지 열린 웰컴 로드쇼에 32개 팀이 도로에서 행렬을 이뤄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였고, 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도로 양쪽은 장사진을 이뤘다.

웰컴 대학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대학로를 공연관광 명소로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공연관광협회 등과 손잡고 2017년부터 열어온 공연관광축제다. 올해는 9월 24일~10월 30일 우수 공연을 릴레이로 감상하는 ‘웰컴 씨어터’, 수요일마다 온라인으로 공연을 상연하는 ‘웰컴 K-스테이지’, 거리공연을 즐길 수 있는 ‘웰컴 프린지’, 자유 참가작들로 이뤄진 ‘웰컴 플러스’로 구성됐다.

웰컴 대학로는 그동안 공연계는 물론 대중에게도 그다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에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재도약을 준비하면서 축제의 진두지휘를 이재원(52) 감독에게 맡겼다. 이재원 감독이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 등을 통해 국내에서 드물게 지역 축제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는 한편 시민 참여를 끌어내는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웰컴 대학로 역시 지난 8월 사전행사를 시작으로 역대 가장 많은 150여 편의 작품이 참가했다.

이재원 감독이 연출을 맡은 웰컴 대학로 페스티벌 개막식인 ‘웰컴 로드쇼’ 모습. 주최 측 제공

축제를 축제답게 만드는 것으로 이름이 나면서 이 감독은 올가을 4개 축제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웰컴 대학로 외에 정선아리랑제(9월 15~18일),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10월 1~3일), 노원탈축제(10월 8~9일)로 하필이면 한 달 사이에 모두 몰려 있다. 지난 23일 이 감독을 만나 어떻게 ‘축제의 사나이가’가 됐는지 들어봤다.

“축제는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개월부터 길게는 1년 정도의 준비 과정을 가집니다. 올가을 제가 맡은 축제들이 몰려 있어서 바쁘지만 연초부터 각각의 콘셉트대로 진행해 와서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대학로에서 배우를 거쳐 연극 기획자로 활동하던 이 감독이 축제 전문가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고향 원주로 귀향하면서다. 지난 2010년 서울 생활을 접고 원주에서 감자탕집을 운영한 지 1년 정도 됐을 무렵 원주시 관계자들이 그를 찾아왔다. 당시 원주에서 열리는 전국연극제 개막 두 달을 앞두고 마케팅을 떠맡은 그는 다양한 홍보 전략으로 티켓을 매진시켰다. 원래 3만2000석 전석 무료인 티켓 중 불요불급한 좌석을 빼고 2만8000석을 유료화한 뒤 모두 판매하자 원주시는 깜짝 놀랐다.

“원주에서 규모 있는 공연예술축제를 진행한 경험이 없다 보니 서울에서 기획자로 활동했던 저를 급하게 찾았는데요. 원주 시민들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에 전국연극제가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전국연극제가 성공하자 원주시는 이 감독에게 축제를 부탁하고 나섰다. 과거 군사도시였던 원주는 6·25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이던 2000년부터 격년으로 군악축제인 ‘원주국제따뚜’를 열었다. 2006년에는 4300석 규모의 전용 야외공연장까지 건설됐다. 하지만 원주국제따뚜는 20억원 넘는 예산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 파급효과와 시민참여 등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0년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원주시가 원주국제따뚜를 대신해 준비하던 ‘원주다이내믹페스티벌’의 기획안을 보고 거절했다. 따뚜 야외공연장에서 군부대의 탱크 쇼와 함께 연예인들 초청 공연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후 몇 달 뒤 열린 축제는 시민의 외면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무대 사고로 20여명의 부상자가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자 원주시는 시민이 주인공인 축제를 만들어 달라며 그에게 다시 한번 부탁했고, 그는 2012년 최소 3년간 예술감독을 보장 받고 축제에 뛰어들었다.

“당시 축제에서 ‘다이내믹’이란 타이틀만 유지하면 무엇이든 바꿔도 된다는 허가를 받았어요. 그래서 시민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상금(최고액 3000만원)을 내건 댄싱카니발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일본의 마쓰리와 브라질의 카니발을 벤치마킹했는데요. 당시 전국 곳곳의 춤 동아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물론 강원도 내 각종 학원이나 복지센터 등을 직접 찾아가 댄싱카니발에 참가하도록 설득했죠.”

이재원 감독이 연출을 맡은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 모습. 주최 측 제공

2012년 첫선을 보인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에서 따뚜 공연장의 연희와 뮤지컬 갈라쇼도 호평을 받았지만, 도심 원일로 200m에서 펼쳐진 댄싱카니발 경연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끌어냈다. 당시 45개 팀 4410명이 참가한 퍼레이드 공연은 관객들의 환성을 자아냈다. 덕분에 프린지였던 댄싱카니발 경연은 이듬해부터 메인 프로그램이 됐다.

2013년엔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길이 120m, 폭 15m의 대형 가설무대도 등장했다. 이에 따라 따뚜 공연장 4300석에 더해 가설무대 양옆 임시객석 1만6000석이 만들어졌다. 약 2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댄싱 팀들은 가설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며 따뚜 공연장에 들어오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던 2018년엔 해외 팀 40개를 포함해 146개 팀 1만2000여명이 등록해 댄싱카니발 역사상 가장 많은 참가자를 기록했다.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의 성공은 원주시의 지속적 지원과 안정적인 축제 사무국 운영을 토대로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축제를 만든 덕분입니다. 솔직히 시민참여형 축제는 예술감독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게 중요해요.”

이재원 감독이 연출을 맡은 ‘노원탈축제’ 모습. 주최 측 제공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의 성공이 알려지면서 이 감독과 축제 스태프에겐 지역의 다양한 축제와 행사로부터 러브콜이 이어졌다. 이 감독의 경우 2017년부터 노원탈축제도 이끌고 있으며, 올해 정선아리랑제와 웰컴 대학로를 새로 맡았다. 노원탈축제는 과거엔 주민이 그저 관람하는 행사였지만 그가 맡은 이후 서울의 대표적 시민참여형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정선아리랑제는 올해 지역 축제의 전형적인 외지 야시장과 품바 각설이를 배제한 대신 아리랑을 활용한 노래와 댄스를 겨루는 ‘A-POP’ 경연대회를 새로 선보이며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축제 감독은 시대적 흐름과 지역 정서를 읽어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의 드라마틱한 성공 이후 전국 곳곳에서 이 감독을 찾다 보니 그가 맡은 축제들이 비슷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의 단골 수상자인 지역 춤 단체들이 웰컴 대학로, 노원탈축제 등 그가 관여하는 여러 축제 퍼레이드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전역에 요사코이 마쓰리가 200개 정도 열린다. 고치현에서 시작됐지만 여러 지역으로 그 형식이 도입됐기 때문”이라며 “국내에서도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 같은 축제가 늘어나는 게 바람이다. 앞으로 20개 정도 만들어져 하나로 모이면 브라질 리우 삼바 축제 못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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