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해치려고?” 칼부림… 마약 하면 누구든 ‘괴물’ 돌변

[중독된 사람들, 비틀대는 한국]


지난해 12월 27일 밤 11시30분쯤 서울 구로구에서 남성 A씨가 택시에 올랐다. 목적지는 경북 안동이었다. 1시간쯤 뒤 평택~제천 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그는 돌연 품속에서 커다란 흉기를 꺼내 들었다. “내가 가자는 대로 가지 않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을 것”이라며 택시기사 목에 흉기를 갖다 댔다. 기사는 겁에 질려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대치 상황은 목적지 안동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이상 계속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필로폰에 취한 상태였다. 텔레그램을 통해 구한 마약을 한 건물 계단에서 투약한 뒤 택시를 탄 것이다. 당시 그는 “택시기사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나를 해치러 온 사람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A씨가 환각에 빠져 범죄를 저지른 건 처음이 아니었다. 같은 해 7월 안동 한 술집에서 마약에 취해 아무 이유 없이 처음 본 여성의 눈 부위를 가격했고, 이에 앞서 2020년 10월에는 인천 계양구 한 상점에서 빈 소주병으로 종업원의 머리를 내리쳤다.

전문가들은 마약이 체내에 흡수되면 환각·환청 증상을 동반하는데, ‘가상 현실’에 있는 것 같은 정신착란을 불러온다고 설명한다. 평소 발현되지 않는 폭력성까지 자극하면서 2차 범죄도 유발한다. 실제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마약으로 인해 발생한 살인 등 2차 강력 범죄의 피해자는 최근 5년간 51명에 이른다.

B씨도 2014년 6월 필로폰 투약 후 환각 상태에서 내연녀 어금니 1개를 뽑은 뒤 왼쪽 안구까지 적출하는 엽기적 범행을 저질러 구속됐다. 당시 해당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신용원 소망을나누는사람들 대표는 “(B씨는) 당시 약물을 과다 투여한 상태였는데, ‘여자친구가 사이버 인간으로 보였다’고 말했다”며 “필로폰 등의 약물은 각성 효과가 있어서 불특정한 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0년 12월에는 경기도 의정부에 살던 40대 C씨가 환각 상태에서 경찰을 살해하려 했다. 경찰은 난동을 부리던 그의 집에서 필로폰으로 의심되는 물질을 발견했다. 성분을 분석하는 동안 석방된 C씨는 흉기를 준비해 이불 밑에 숨긴 뒤 경찰이 체포하러 오기만 기다렸다. 경찰이 찾아오자 “안방으로 오세요”라며 흉기가 있는 곳으로 유인하기도 했다. 이후 수상한 낌새를 챈 경찰이 방을 나가려는 순간 흉기를 들고 달려들었다가 붙잡혔다.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C씨는) 평소 폭력적 성향을 갖고 있지 않았다”며 “이번 범행은 약물 투약으로 초래된 과대망상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환각 상태에 빠진 이를 제압하는 일도 쉽지 않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서도 칼부림이 벌어졌다. 20대 D씨는 필로폰을 투약한 후 과도를 들고 “죽여버리겠다”며 자신의 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협했다. 경찰이 테이저건을 발사했는데, 마약 기운 탓에 쓰러지지 않고 한참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한 마약 담당 수사관은 “아무 이유 없이 난동이 벌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예전에는 조현병 여부를 확인했는데, 지금은 가장 먼저 마약부터 의심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마약은 강력 범죄의 주된 원인 중 하나”라며 “환각 상태에서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무고한 시민이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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